[우토로희망모금] 우토로에 사랑을

[우토로희망모금] 우토로에 사랑을
우토로에 사랑을 - 이광철

추운 겨울을 견디고 진달래 꽃망울이 터질 즈음인 새 봄 2005년. 2월말경인지 3월 초쯤에 김형주의원과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실무자 몇분이 의원회관 8층에 있는 나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우토로를 알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우토로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이 생존권과 거주권 확보를 위해 온 몸으로 투쟁한 지 10년이 되었음에도 나는 그날에서야 우토로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김형주 의원과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실무자들이 우토로의 과거와  오늘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토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치인의 한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분노와 서글픔 그리고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한없이 느꼈다. 우토로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의 의정활동의 그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게 되었고, 우토로에 거주하는 동포들에게 ‘그들을 염려하는 조국이 있고, 우토로 주민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동포가 있음’을 보여주리라 다짐하고 다짐하였다.

우토로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시작되다

그 날 이후 국회의원 299명에게 우토로에 대한 소개글을 보내면서 “우토로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 결성 안내문도 함께 보냈다. 2005년 4월에 한나라당 나경원의원과 내가 국회의원 모임 공동대표로 여야의원 17명이 함께 하였고 4월23일에는 열린우리당 김형주 의원과 나, 한나라당 나경원의원과  정문헌의원 그리고 박연채 변호사와 김경남 목사 등 우토로국제대책회의 대표들과 우토로 현지를 방문하였다.

내가 보았던 우토로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60년이 되었건만 1940년대 그대로 정체되어 있었다. 1941년 교또비행장 건설당시의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의 합숙소인 함바가 일부 남아있었고 비행장 부지는 철조망에 둘러싸여 육군자위대가 주둔하고 있고 비만 오면 넘치는 하수구와 60년전 그 우물이 그대로 있었다.(상수도는 2000년에 들어왔다)

현관에 걸려있는 문패 鄭(정), 朴(박), 金(김), 李(이)

교또부 우지시 우토로 51번지 6000여평의 쑥 꺼진 땅에 얼기설기 살아가는 65세대 200여명의 조선인들은 일본 국적 취득을 거부하고 조선인으로 60여년을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오고 있다.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인 집 현관에는 鄭, 朴, 金, 李 등 문패가 걸려있었고 마을회관에는 ‘에루화 에루’라는 한글이 선명하고도 또렷하게 박혀있어 그들을 등한시하고 보살피지 못한 조국과 고향동포들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우토로 사람들은 식민시대에 나라 잃은 설움과 함께 온갖 착취를 당하였고 해방 후에도, 한일협정 때에도 한 일 양국정부로부터 버림받고 일본 사회로부터 차별받아온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조국이 조선임을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으며 그들은 지금도 자신이 조선인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제 이대로 이렇게 우토로에서 살고자 한다.  60여년을 살아온 우토로가 그들의 삶의 전체이고 일부이기 때문이란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의 문제

우토로를 다녀온 뒤 국회의원모임은 우토로를 공론화하여 정부의 대책수립과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임을 확인하고 해당 상임위와 본회의에서의  대정부질의, 5분 발언 등을 통해서 우토로에 대한 정부의 대책 수립을 요구하고 국회에서 각계 각층이 참여하는 토론회, 해방60주년을 맞이하여 방송사와 함께 우토로를 소재로 한 특집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 국민성금을 모금하는 일 등을 고민하였고 우토로 주민들을 초대하여 우토로의 절박함을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일,  국무총리, 외무부장관 면담  국회의원들의 모금 참여와 공공기관의 모금참여 요청 및 대기업들의 모금참여를 위한 수백통의 서신을 발송하는 등 할 수 있는 일은 가리지 않고 실행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여러 곳에서 반응이 나타났고 반기문 외교부장관의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우토로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확약을 받아낼 수 있었고 외무부 직원들은 단체성금을 모아 우토로 주민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도 하였다.

나는 우토로의 문제가 한ㆍ일 양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존재하는 문제로 본다.  우토로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이웃으로 남을 수도 있고 가깝지만 먼 이웃으로 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토로 문제는 해방 후 재외동포에 대한 한국정부의 책임과 미국과 일본의 책임, 한일협정에서의 외면과 방치, 그리고 재일조선인 차별정책과 우지시의 우토로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삶의 요구에 대한 외면, 60년을 거주해 온 우토로 주민들을 제외한 토지 소유권 분쟁 등 다층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복합적으로 문제가 얽혀있음에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우토로 주민들의 거주권문제이며 우토로 주민들의 거주권의 확보는 생존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 우토로는 주민들의 거주권 확보를 넘어서서 한ㆍ일 양국정부와 시민들이 참여하여 함께 만드는 평화의 마을, 역사의 마을로 새롭게 둥지를 틀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왜? 우토로는 평화를 갈구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설움많고 한 많은 우토로에 진정 따뜻한 새 봄이 왔으면 좋겠다.
그 땅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람대접 받으면서 원하는 만큼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우토로에서 보았던 우리 어머니들의 그 눈물이 꽃으로 변하여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들을 염려하는 조국이 있음을,
그리고 그들에게 기쁨과 아픔을 함께나누는 형제가 있음을 기억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러저러한 직함들이 있었지만 ‘우토로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의 대표라는 경력이
나로서는 가장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운 직함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우토로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전주에서   이 광 철

우토로마을 살리기! 마지막 희망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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