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이가 된 나전칠기장의 만병통치약

미장이가 된 나전칠기장의 만병통치약
미장이가 된 나전칠기장의 만병통치약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술과 담배를 가까이할 수밖에 없다. 워낙 일이 고되기 때문에 일을 끝내고 술이라도 한잔 걸치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렵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치고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저마다 자기만의 사연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면서 힘겨운 삶을 술과 담배로 달래며 견뎌낸다.

나도 그랬다. 그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나도 하루에 담배를 한 갑 반 이상 피워대는 골초였고, 술도 1.8리터짜리 소주를 들이키는 주당이었다. 그랬던 내가 술과 담배를 딱 끊었다. 술보다 더 끊기 힘든 것이 담배라고 한다. 오죽하면 “담배를 끊는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났을까? 그만큼 담배는 중독성이 강해 웬만큼 독하지 않으면 끊을 수가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를 독한 놈으로 만든 것은 바로 ‘아름다운재단’이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는데 김군자 할머니가 아름다운재단에 자기의 전 재산을 기부하는 모습이 나왔다. 김군자 할머니는 젊은 시절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통을 당한 피해자다. 전쟁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 산 삶도 굴곡의 연속이었다.

“악착같이 돈을 벌었어. 내 고통이 모두 가난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문득 돈이 없어 나처럼 고생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거야. 그래서 가진 돈을 다 내놓았어.”

주름진 할머니의 얼굴을 보는데 설움인지 감동인지 모를 그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라왔다. 할머니는 말했다. 악착같이 붙들고 있던 것을 놓아버리니까 마음도 넉넉해지고 손자들도 생겨 좋다고.

그때 처음 아름다운재단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사는 게 바빠 금방 잊고 몇 달을 그냥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텔레비전에서 아름다운재단을 보았다. 어떤 곳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단체라는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 자기가 가진 것의 1%를 나누자는 데 호감이 갔다.

그렇지만 역시 처음 보았을 때처럼 바로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큰맘 먹고 114에 전화를 걸어 재단 번호를 알아내고, 다시 재단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어 찾아갔다. 달랑 1만 원을 들고. 

안국역에서 내려 가르쳐준 대로 길을 잡아 재단 사무실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선뜻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망설여졌다. 나이 오십을 훌쩍 넘긴 남자가 10만 원도 아닌 겨우 1만 원을 들고 기부하겠다고 간 것이 어쩐지 부끄럽고 민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을 했는지 금방 알게 되었다. 재단 사람들은 따뜻하게 나를 환대해주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오십이 넘을 때까지 한시라도 편했던 적이 있었던가?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쳤지만 늘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상관없이 엉뚱한 쪽으로 인생이 흘러갔던 것 같다.

6.25 전쟁이 터진 1950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나 역시 먹고살기 힘들어 배를 곯은 적이 많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후 바로 동네에 있던 나전칠기 집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가방끈이 짧으니 확실한 기술이라도 익혀야 험한 세상을 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나전칠기에 관한 한 최고가 되고 싶다는 야무진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동네에서 최고 기술자가 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나이는 자꾸 먹어가는데 나는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 답답한 세월이 꾸역꾸역 흘렀다.

그러던 중 같이 일하던 동료 한 명이 이왕 하는 거 나전칠기 인간문화재인 김태희 선생님에게 가서 배우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선생님은 흔쾌히 나를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선생님을 도우면서 나전칠기의 깊은 세계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꽃다운 청춘은 그렇게 나전칠기와 함께 흘러갔다. 선생님으로부터 어느 만큼 수준을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실력도 늘었다. 고맙게도 선생님은 여러 명의 문하생 중 나를 수제자로 인정해주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전칠기 일인자가 되고 싶다는 내 꿈이 이루어질 것도 같았다.

그러나 김태희 선생님의 죽음은 내 인생을 180도로 바꾸어놓았다. 구구절절 사연을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항상 버팀목 역할을 해주시던 김태희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나는 수십 년을 함께했던 나전칠기와 이별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나전칠기 일을 그만두면서 시작한 게 미장일이다. 나전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주로 내가 담당했던 역할은 옻칠을 하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미장일과 성격이 비슷해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서 그런지 이렇다 할 재미도 없었고, 열심히 하고 싶은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라도 있었으면 좀 달랐을까? 무얼 하든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겠느냐는 배짱에 되는 대로 살았다.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놀고, 때로는 일이 있어도 피곤하고 하기 싫으면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1% 나눔’을 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비록 적은 액수지만 내가 내는 돈이 다른 누군가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신이 났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생활이 저절로 달라졌다. 예전에는 힘들게만 느껴졌던 노동이 즐거워졌고, 일이 있으면 악착같이 나가게 되었다.

술을 마시는 것도 싫어졌다. 사실 술 한잔 하려면 몇만 원은 우습게 나간다. 분위기가 고조되어 내친 김에 2차, 3차까지 달리면 수십만 원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잠시 기분 좋으려고 적게는 몇만 원, 많게는 수십만 원을 술값으로 쓴다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돈을 아름다운재단에 주면 알아서 좋은 일에 잘 써줄 텐데, 마셔서 없앨 수는 없었다.

담배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한 갑 반 이상씩 피워대니 담뱃값도 한 달이면 얼추 10만 원 가까이 됐다. 몸에도 나쁜 담배를 돈 버려가며 피울 이유가 없었다. 미련 없이 끊었다. 삶의 목표가 생겨서인지 수십 년을 피웠던 담배지만 큰 어려움 없이 끊을 수 있었다. 생각이 참 많은 것을 바꾼다는 것을 실감했다.

앞으로 내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될까? 요즘은 웬만하면 80, 90까지 산다고 하니 나도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 더 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주 잠깐 ‘나도 노후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내 한 몸 편하게 살려고 돈을 모으고 싶지는 않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일해 돈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것이 지금의 심정이다.

특히 수십 년을 투병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나 하나 노후에 편안하겠다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기가 어렵다. 당뇨병을 앓았던 아버지는 제때 치료받지 못해 발이 썩어 어쩔 수 없이 썩은 부위를 잘라내야 했고, 어머니도 평생을 지병인 위장병과 해소로 고생하다 고통 속에 저세상으로 가셨다. 가난 때문에 마음 편히 치료받지도 못하고 자식들에게 짐만 지운다며 죄책감 속에 눈을 감으셨던 부모님. 아직도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내 것을 조금씩 나눌 때마다 마음속에 깊게 파인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 느낌이다. 부모님을 제대로 치료해드리지 못했던 슬픔도, 돈이 없어 남들 다 하는 가정을 꾸리지 못한 설움도, 사람들에게 치여 나전칠기장의 꿈을 접어야 했던 절망도 이제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다 ‘나눔’ 덕분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한 달에 한 번 아름다운재단의 문을 두드릴 생각이다.

김춘배 : 나전칠기 인간문화재인 김태희 선생의 수제자였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지금은 나전칠기 일을 그만두고 공사현장에서 미장일을 하고 있다. 힘든 노동이지만 나눔 덕분에 오히려 활력을 되찾고 마음도 편안해졌다고. 2003년 4월부터 지금까지 적게는 1만 원부터 많게는 몇십만 원을 기부하고 있으며, 기부한 지 1년째 되던 날은 자축하는 의미에서 1백만 원이라는 거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아름다운재단 1% 나눔에 참여하려면?
 1%란 내가 나눌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으로 아름다운 나눔의 시작을 상징한다. 내가 가진 것의 1%를 수치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누고픈 마음, 내가 나눌 수 있는 가장 편하고 부담 없는 금액이 바로 1%다. 1%가 무슨 큰 도움이 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아름다운재단은 ‘한 사람이 열 걸음을 걷는 것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믿는다. 모두가 1%씩만 내놓아도 이 세상은 분명 더 따뜻해질 수 있다.
세상에거 가장 기분 좋은 일 (유혜규/Y브릭로드/2009)

책 한 권에 아름다운재단 기부자님들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국내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는 서른 일곱명의 기부자의 나눔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유혜규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이 그것입니다.  
이중에는 매달 재단을 방문해서 기부금을 전달해주시는 수혜자에서 기부자로 나눔의 선순환을 실천하신 조돈중 기부자님, 나눔의 택시 김형권 기부자님 등 아름다운재단 기부자 세 분의 나눔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또한 해피빈 기부자, 여미옥 홍선생미술 대표와 김현미?서정연 카페 나비루스 운영자의 나눔 이야기도 실렸습니다. 
이 책을 펴낸 (주)웅진씽크빅의 배려로 이 분들 중 김춘배 기부자님의 원고 전문을 싣게 되었습니다. 다른 기부자님들의 생생한 나눔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가까운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 공식블로그

아름다운재단은 우리 사회에 올바른 기부문화를 확산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과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1개의 응답

  1. 사∩랑↔해ο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평생 건강정보 : 내 병은 내가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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