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난, 박원순 시장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때로 난, 박원순 시장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 NGO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 박원순 변호사의 미국 시민운동 기행 (박원순. 1999. 예담.) 을 읽고

 

 

음… 낚이셨다면 일단 죄송하다… 아름다운재단 내에서도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핑계로, 옛날에 적어 놓았던 독후감 하나를 꺼내 올려본다. 이번은 많이 재미없는 글이다. 사실은 배분사업의 농번기라 바빠서 유쾌한 인터뷰를 마련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염치 없지만, 우리 가끔은 진지모드에도 젖어보자. 다음에는 ‘강용석 의원의 고발’보다도 더 웃기고 재미있는 대작을 올려드리겠다.

아직도 ‘Special’의 철자가 헛갈리는 나는, 미국을 잘 모른다. 기껏 ‘테레비’나 책으로 주워들은 잡지식 정도다. 책 머리에서 저자 박원순 변호사 역시 자신의 짧은 미국 탐방기를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라고 사전양해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코끼리 다리를 만지기는커녕 직접 보지도 못했으니, 이 책을 통해 감히 미국의 시민사회를 말하기에 부족하다. 어쩔 수 없이 이 책과 더불어 예전에 주워들었던 미국에 관한 잡지식들을 가지고 엮어볼 수밖에 없겠다. 따라서 이 글에 관한 모든 반론에 대해 겸손하게 기권한다.  

책에도 나와 있다시피 미국의 민주주의는 개인과 시민권에 바탕하고 있다. 개인의 권리는 결코 국가나 타인에 의해 침해받을 수 없으며, 모든 시민은 인종과 출신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신조는 독립전쟁을 거쳐 여성과 흑인들의 지난한 싸움을 통해 확립되었으며, 현대에 이르러 수정헌법 1조와 14조에 명시되어 사회의 가장 원칙적인 가치로 존중되고 있다. 

안 그래도 재미없는 글, 수정헌법 내용까지 갖다놓으면 독자들이 욕하면서 모니터 꺼버릴까봐… 따로 인용은 하지 않겠다. 수정헌법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설명하자면… 최근에 벌어진 ‘위키리스크’ 관련 사건을 포함하여 미국에서 사회적인 주목받았던 주요 헌법소송들이 십중팔구 수정헌법에 대한 해석문제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이에 비해 오랫동안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해왔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시민과 개인의 권리’보다 ‘다수결의 절대성’을 강조한다. 북한이 언제 쳐들어 올지도 모르는 비상상황에서, 소수의견을 가진 자들은 모두의 안위를 위해 기꺼이 인내해야 한다는 논리다. 비민주적이고 전체주의적일 수 있는 이 논리는 다수결을 강조함으로써 지켜진다. 그리고 다수결은 세상에서 가장 민주주의적인 제도라고 강조되었다. 중학교 도덕 교과서를 떠올려보자. 민주주의를 설명하면서 벤담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먼저 가르친다. 또한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대칭되는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마치 다수결이 독재와 전체주의와 반대개념인 것처럼 가르친다. 사회에서 다수결의 맹점을 비판하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목소리는 다수결의 원리 즉 민주주의를 깨뜨리는 존재, 즉 공산주의자라고 색깔을 칠하며 매도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과거 한국의 민주주의가 왜곡되었다고 해서, 지금 미국의 민주주의가 무구하게 옳다는 말은 아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미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운동의 근간은 국가에 대한 시민권 확보와 개인권익 침해반대에 있다. 이는 미국에 수많은 공익소송·제보자 단체들과 시민권 단체, 소수자 단체, 반부패 단체들이 있게 하는 튼튼한 바탕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식 시민권과 개인권익에 대한 철학은, 국가가 비록 도덕적이고 공익적 사회규제를 한다해도, 그것이 개인권을 침해하는 한 결코 위법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게 무슨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 철학이 미국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의 예를 살펴보면 그 맹점을 알 수 있다. ‘시민과 개인의 권리라면 총기소지도 기본권적 바탕에서 허용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에 대해 간섭할 수 없다. 그리고 계약의 대가인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환자라면 병원이 당연히 치료를 거부하고 쫓아내도 된다’는 것이 미국적 상식이다. 기업은 직원들을 고마운 일손, 사회적 동반자로 보기보다는 용역거래의  갑-을 관계로만 본다. 회사의 불이익을 발생시켰다면 그 직원에게는 어마어마한 손해배상 소송이 날아갈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나라 미국, 그래서 사회의 평등을 지향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나 때로 다양해서 평등하지 못한 나라 역시도 미국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다양성과 평등에 대한 미국의 지향가치가 지켜지는 것은 수정헌법을 통해서다. 그러나 때로는 다양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이루어지는 근거 역시 수정헌법을 통해서이다. 수정헌법은 내가 생각하는 세계 최대의 역설이다. 

1953년 흑인 학생에 대한 분리 입학의 차별을 철폐한 미연방대법원의 브라운판결 이후, 수정헌법 14조를 소수자의 권리옹호로 이해하는 판결과 법안이 못물 터지듯 이어졌다.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연방의회와 주의회를 통해 소수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철폐 법안이 만들어졌다. 이 법안들은 불리한 소수자들을 위해 특혜(privilege)나 우대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내용으로 했다. 그러나 차별받던 소수자들의 권익이 어느정도 보장되자, 1990년대 이후에 들어 소수자에 대한 특혜와 우대가 오히려 백인 다수를 역차별하는 것이라는 소송이 빗발쳤다. 이 소송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승소하는 비율도 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역차별 소송의 근거 역시 수정헌법 14조라는 것이다. 

미국인이 아닌 나로서는 이러한 역설이 이해되지 않지만, 미국적 민주주의 가치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죽어도 개인권익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현재의 미국을 차별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평등사회라고 생각한다면, 소수자에 대한 우대정책은 불합리한 특혜가 된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이 불평등한 요소를 가진 사회라고 본다면, 소수자 우대정책의 철폐는 곧 차별의 자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 미국은 평등한 사회인가 혹은 아직은(혹은 여전히) 불평등한 사회인가? 오윤씨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저자 박원순 변호사는 미국의 다양한 시민단체를 방문하면서, 많은 감동을 받고 그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때로는 미국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증명하고자, 보수주의 단체와 총기소지 옹호단체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마 저자는 미국식 다양성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오히려 나는, 이 책이 의도한 다양한 시민단체에 대한 소개에서, 역설적이게도 지독하게 미국적이라서 왜곡된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읽을 수 있었다.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시민단체, 심지어 가장 비미국적이어야 할 인디언 단체마저도 미국적이었다. 그들은 평등하고 공공성이 담보된 미국사회를 지향하고 있었지만, 결코 인디언이나 히스패닉의 문화가 미국을 지배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미국적 가치에 어울리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생겨날 수 없는가?”. 미국의 신보수주의자 립셋(Seymour Martin Lipset)의 의문점이다. 립셋은 헌팅턴(Samuel P. Huntington)류의 노골적인 반인종적 보수주의 학자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도 미국 우월주의의 주장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미국은 다른 유럽국가와는 다른 독특한 시민, 민주주의의 역사를 지녔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즉 월등한 도덕성과 시민권 의식을 가진 청교도에 의해 건국되어, 그 건국의 가치를 전쟁(남북전쟁)을 불사하며 지켜온 덕택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다. 나아가 이러한 미국적 신조는 인종을 불문하고 미국인이라면 지켜야 할 국가적 가치라고 역설한다. “그 미국적 신조가 과연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아계 미국인에게도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추가질문을 덮어둔채 말이다. 헌팅턴은 이에 한 술 더 뜨고 있다. 미국의 인종별 인구분석을 통해 무식하게 ‘번식’하는 히스패닉으로 인해 미국적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이제야 힘들게 겨우 흑인들을 ‘동화’시켜 놓았는데도 말이다. 

여전히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아직 미국은 앵글로섹슨의 나라이다.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라의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있다. 오바마? 그래 오바마는 분명 유색인종이다. 하지만 백인주류적 교육을 받고 삶을 살아온 면이 짙다. 미국의 일부여론이 지적했듯 “그는 충분히 검지 않다(not black enough).”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역사와 신조는 백인주류만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저자가 소송과 권익보호를 미션으로 하는 지극히 미국적인 인디언 단체보다는, 차라리 총칼을 들고 맞서고 있는 인디언 ‘테러집단’을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혹은 저자가 미국에서 비미국적 조직을 찾을 수 없었다면 왜 그런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모습을 읽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민단체들이 보여주는 모금의 과학성이나 조직과 활동의 선진적 면모는 기꺼이 배울 만하다. 그리고 부정부패에 대한 시민들의 일반적인 경각심이나, 공익제보와 공익소송의 가치를 오해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시민의식도 부럽다. 하지만 다시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부러운 모습들마저도 개인주의적인 미국 민주주의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 혼란스럽다. 유쾌하지만은 않은 독후감을 느끼고 이 책을 읽고 덮으면서, 그 한 마디가 떠올랐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친다. 東道西器.

東道西器. 동방불패라고는 읽지마시라. 아름다운재단의 구성원은 무지개처럼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필요할 때는 스스로 토론해 간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때로는 이 글처럼 짜증나게 재미없는 글을 펼치는 이도 있으며, 널널하기만 한 오윤씨도 가끔은 진지한 고민을 한다는 것. 그것을 말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버렸다. 간만에 학구모드 포스팅에 뿌듯해하며 다음에는 ‘시장경제와 복지’에 대해 써볼까라고 중얼거리는 데, 옆에서 다른 동료가 또 이런 재미없는 글 올리면 ‘공익의 이름으로’ 죽여버리겠단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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