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집, 김군자 할머니 아흔 생신맞이 방문

나눔의 집, 김군자 할머니 아흔 생신맞이 방문

지난 5월 아름다운재단의 1호 기금 출연자이신 김군자 할머니를 찾아뵙고 왔습니다. 작년 이맘 때 쯤에는 할머니를 재단으로 모셔서 생신 파티를 해드리기도 했는데, 올해는 저희가 광주 ‘나눔의 집’에 방문했습니다. 매 년 할머니 생신과 명절이 되면 재단의 간사들 몇몇이 모여 할머니를 찾아뵈러 갑니다. 할머니는 아름다운재단의 홈페이지와 건물 1층에 전시된 기념비를 통해서 자주 뵐 수 있지만, 이렇게 직접 또 뵈러 가는 날에는 마치 TV속 연예인을 뵙는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

나눔의집 김군자 할머니방

수식어 없이… ‘할머니, 안녕하세요?’  

김군자 할머니 앞에는 ‘일본인 종군위안부’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롭고 거친 삶을 살아오셨으니 우울한 얼굴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뵌 할머니의 얼굴은 정말로 평온했습니다. 2년전 할머니를 처음 뵜을 때, 사실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하나 겁도 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외할머니 뵈러가는 기분으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왔을 것이라 으레 짐작하여 거부감이 생겼었지만, 그 벽을 허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저 우리 할머니처럼 똑같이 대하는 것. 그러다보면 정말 내가 어렸을 때부터 뵈었던 외할머니처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바로 ‘함께 살아가기’입니다.

일찍 준비한다고 나섰는데도 나눔의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습니다. 나눔의 집 현관에서 관리인 아주머니가 바쁘게 이야기하십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할머니가 아침부터 기다리고 계셨는데…”  

할머니께 드린 선물, 희망가게 창업주가 직접 달인 홍삼액 세트입니다.

할머니께 드린 선물, 희망가게 창업주가 직접 달인 홍삼액 세트입니다.

 

마음 바쁘게 김군자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니 할머니께서 환하게 웃으면서 맞아주셨습니다. 아침에 출발한다는 이야기를 아침에 도착한다는 말로 전달받으셨나봅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이야기하며 더운 여름을 보내는 길 힘들지 않으시도록 홍삼액 세트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홍삼은 재단 희망가게 창업주가 운영하시는 가게에서 직접 다려서 준비했죠. 뭘 이런 걸 또 사왔냐고 웃으시는 할머니 표정을 보니 같이 간 신입 간사분들과 다른 재단 간사들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

작년 5월, 재단을 방문하셨을 때 영상을 보고 계신 김군자 할머니

작년 5월, 재단을 방문하셨을 때 영상을 보고 계신 김군자 할머니

 

김군자 할머니의 말씀을 듣다보면, 의지가 매우 굳건한 분이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호대가 있어야 거동이 가능한 불편한 몸이시지만, 저희가 방문하면 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좋은 말씀을 많이 들려주십니다. 작년 할머니께서 옥인동 아름다운재단 사옥에 처음 방문해주셨을 때에도 주옥같은 어록들을 많이 남겨주셨습니다. 그동안 김군자 할머니께서 해주신 말씀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말씀을 기억해봤습니다. 

[ 김군자 할머니 어록 ]

“평생 모은 게 이것 밖에 안됩니다. 너무 부끄럽습니다.” 

“돈만 많아서는 안돼요. 돈을 쓰는 가치를 알아야 하는 거야” 

“자꾸 아픈 것 보면 `갈 날`이 멀지 않은 것같아요.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했으니 요란스럽게 하지 마세요. 부끄럽습니다.” 

“신기하게도 가진 걸 놓아버리니까 마음도 넉넉해지고 손자들도 생기더라고.”

“너무 늦게 깨달은 거지만, 죽는 날까지 나누면서 살고 싶어.
낭비하지 말고 조금 아껴서 다른 사람 도와주면서 이승을 훌훌 떠나고 싶어.”

 

그리고 밖으로 나와 나눔의 집 역사관을 한 번 둘러봤습니다. 

이미 전에 둘러본 곳인데, 늘어난 고인의 이름이 눈에 띄어서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나눔의 집

1) 1992년 10월 서울, 나눔의 집 개소식 

1992년 10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처음으로 <나눔의 집> 개소식을 갖게 되었습니다.이후로 명륜동, 혜화동을 거쳐, 1995년 12월 조영자님께서 기증해 주신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소재 650여평의 대지에 180여 평(생활관 두 동과 법당 및 수련관으로 사용하는 한 동)의 노인 주거복지시설을 신축하였습니다. 현재는 1,800평 부지에 생활관 120평, 역사관 104평, 교육과수련관 60평, 사무동 15평, 집중치료동 60평 총 359평의 건물이 있습니다.

2) 과거사참회, 진상규명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은 매주 한글수업과 함께 그림수업을 통해 익히신 그림으로 수 차례에 걸처 내외에서 그림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과거 일제의 일본군 ‘위안부’ 만행에 대한 진상을 역사에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주관하는 일본대사관 앞에서의 수요시위를 통하여 일제의 일본군 ‘위안부’ 만행을 폭로하고 일본이 과거사에 대하여 진정으로 참회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나눔의 집>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통하여 길이 후손에게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생존해 계시는 분은 현재 56명, 나눔의 집에는 10명의 할머니들이 살고 계십니다.

[출처] http://www.nanum.org

 

 

 이번 나눔의 집에는 아름다운재단 간사의 딸 아이가 동행했습니다. 처음 나눔의 집에 방문한 아이는 호기심에 가득 차서 이곳 저곳을 다니며,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관에 전시된 할머니들의 그림과 사진들, 일본군 흑백 전쟁 사진을 보며 아이는 무척이나 신기해했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 들어서며 어디까지 설명하면 좋을까 망설여지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했던 한 개인의 일대기가 잊혀지지 않기 위해 한 시대의 역사처럼 전시된 역사관, 

사진과 영상으로 복원되었지만 감히 전부라 예측할 수 없는 김군자 할머니 개인의 삶, 

그리고 한 개인에게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아이에게 ‘역사’라 이야기해야 할지, 일본의 탓으로 돌려 묵인했던 어른들의 모습은 설명하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는 나. 

일본 사람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 그분들의 가족들 그리고 이 역사관을 통과했던 수 없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역사가 되어버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묵인했을 수많은 사람들.  

잊지 않고,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

나눔의집,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과거의 사건들이 한 개인의 삶과 어우러져 역사가 되었고, 또 그것이 오랜 기간 보존되고 있습니다. (역사관 마당 바닥에 묻혀진 타임캡슐도 함께.) 그런데 ‘천안함, 연평도 포격, 세월호 사건’ 등과 같이 그 시대와 똑같은 사건은 아니지만, 불특정한 개인이 포함된 사회 이슈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잊지 않고 반복되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보관합니다. 사람과 년도만 바뀌어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용한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이게 뭐예요?’,’이 할머니는 누구예요?’라고 물어오는 저 아이도 크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까.  

수식어 없이 김군자 할머니만 기억하고 오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쉽지 않습니다. 어느 한 쪽도 잘한 주체가 없어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했던 마음이 혹여 아이에게 전해지지는 않았을까, 조심스러웠던 하루였습니다.  

<함께 읽는 글> 김군자 할머니의 나눔이야기

아름다운재단 공식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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