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지 않고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

치열하지 않고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

2000년 8월, 아름다운재단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돈쓰기 운동을 해 보자며 시작되었다. 당시 사업도 돈도 없는 재단이었지만, 내가 가진 가장 작은 것을 상징하는 <1%나눔>을 키워드로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근현대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종군위안부의 삶을 산 김군자 할머니가 장례비만 남긴 채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였다.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 조국에 다시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의 교육비로 써달라고 말이다. 

아름다운재단 1호 기금인 ‘김군자할머니기금’의 출연자, 김군자 할머니

 

당시는 1997년 IMF라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고 있던 시절이라 복지는커녕 우리 삶 자체가 사각지대였던 시대였다. 지금은 정부나 국민 모두가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라고 말하지만 말이다. 자신을 버린 세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김군자 할머니 덕분에 우리는  만 18세가 되면 돈 300만원을 손에 쥔 채 보육시설을 퇴소해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주거비는 물론 생계비조차 없는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자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 말이다. 아름다운재단은 고난의 삶을 살아온 한 위안부 할머니의 기부로 삶의 경쟁에 내몰리는 보육시설 퇴소 대학생을 위한 교육비 지원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들을 위한 대학교육비는 생활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의 한줄기 빛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14년이 흘렀다. 열여덟 어른인 보육시설퇴소 아이들은 이제 양육시설 아동이라 불리운다. 명칭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사각지대이다. 최근 아동자립지원단이 발족되고, 사각지대였던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많아졌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처럼 아름다운재단은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에게 ‘빵과 장미’ 둘 다를 지원한다. 청소년들이 여행을 통해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자발적 여행 프로그램을, 의복 때문에 차별받지 않도록 교복을, 자신의 특기를 살릴 수 있도록 특기적성 교육비와 단기 어학연수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실질적 소년소녀 가정의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주거비를 지원하고, 장애가 있다할지라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게 장애 청소년 맞춤형 보조기구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사회적 제도밖에 있는 사각지대 청소년들의 곤경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상담센터를 지원하려 준비 중이다. 

OECD 빈곤율(2011년)

 

OECD 국가 중 경제성장율이 10위 권 안에 든다는 우리 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심화되었고, 현재는 OECD 국가 중 소득이 빈곤선 이하로 떨어질 빈곤율은 6위로 매우 높다. 지난 2월 세 모녀가 빈곤으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벌어져 이제 겨우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를 하겠다고 세모녀 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얼마 전 경매 푸어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천의 일가족이 자살을 했다. 더구나 그 자녀인 아이가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부모를 따라 죽는다’는 유서를 남긴 채 말이다. 최근에는 12살 초등학생이 자살하는 우리 사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정말 비정상이 정상인 사회란 말인가. 도대체 제도가 삶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 현실을 개탄해야 하는지, 우리의 욕망이 빚어낸 참극이라고 비판해야 할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어디 이뿐이랴. 지난 4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세월호 참극이 발생했다. 그 젊은 생명 298명이 구조가 아닌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건을 고스란히 생중계하듯 언론이 떠벌리는 것을 지켜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을 지켜봐야 했던 부모와 우리 모두, 그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나온 사람들, 그래도 살아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들을 구하려다 고인이 된 사람들, 그들 모두를 슬픔을 지닌 채 지켜봐야만 하는 우리 모두는 트라우마 상태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건으로 유족과 벌어지는 여야 대립을 지켜보노라면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더는 지켜볼 수가 없어서 단원고 생존자와 유족들이 있는 안산에 내려가서 살펴보고, 현장의 필요가 무엇인지 조사해 그들 모두에게 심리 치유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보고 정혜신 박사가 시작한 ‘이웃’의 상담센터를 지원해 지난 9월 개소하였다. 이제 곧 곧 안산 사회복지사님들과 함께 단원구 공동체 회복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지원 할 예정이다. 문득 우리 모두에게 화해와 회복의 메시지를 주고 떠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고통에는 중립이 없습니다.”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도대체 고통 앞에 중립이란 게 있는 것인가, 신조차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는 편당적 사랑을 보여 주는데 감히 인간이 고통 앞에서 중립 운운을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줄 방법을 찾으면 실행하는 게 도리라고 본다.  

아름다운재단 1%나눔 캠페인

 

아름다운재단에는 갓 태어난 이른둥이(미숙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과 공익 활동들을 지원하고 있다.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것이 개인적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우리 모두를 위한 사업을 묵묵히 수행하며 낮은 곳으로 임하는 용기를 지닌 단체와 사람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을 향하고,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머리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를 위한 공익적 사업이 무엇인지 늘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나는 아름다움이란 치열함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는 사람이다. 치열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아름다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이란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에게 세상이 여전히 살아갈만한 곳임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말이다. 아름다운재단은 앞으로도 우리사회 사각지대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돈쓰기 사업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대외협력실ㅣ이정이 실장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노신(魯迅)의 《고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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