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 대표 영상을 제작한 권수진 작가를 만나다

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 대표 영상을 제작한 권수진 작가를 만나다

‘신데렐라’에서 ‘달려라 하니’로, 그 변화의 과정을 듣다

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 사업 대표 영상- 권수진 작가 인터뷰

 

서울에 첫눈이 온 날, 차가운 바람을 가로지르며 따뜻한 눈빛의 권수진 작가를 만나고 왔습니다. 아름다운재단 근처의 한 커피숍에 앉아 옆으로 스며드는 햇살과 함께 한겨울의 카푸치노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수줍음이 많은 권수진 작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 그 손을 공개합니다.

 

권수진 작가는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작가입니다. 2003년 레스페스트 영화제(지금은 한국에서 사라진)에서 일을 할 때부터니까 벌써 8 년이나 되었습니다. 권수진 작가는 모션그래픽이나 영상디자인이 대중화되기 전에 활발히 활동하던 영상작가였고 레스페스트 영화제에서도 관객상을 다수 수상, 글로벌 섹션에 선정되어 전세계 관객들과 작품으로 만나기도 하였던 능력자(!)였습니다. 한 동안 개인 작업을 하면서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던 그녀를 희망가게 대표 애니메이션을 계기로 다시만날 수 있었고, 함께 즐거운 작업을 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이 만남이 반가웠습니다.

 

Q: 이번에 작업한 희망가게 대표 영상을 보다보니 기존 권수진 작가가 해오던 작업 스타일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작품 캐릭터로 픽토그램*을 선택한 것도 의외였습니다. 

제 작업 스타일은 그래픽이나 일러스트(그림체)가 개인적이고 작가적인 느낌이 강해서 호불호가 갈리고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제 작품을 보는 대상층은 비슷한 나이대의 예술을 베이스로 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영상이나 그래픽,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등의 시각적인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누구든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소재와 장르로 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아, 작업 멋있다”, “예쁘다” 이런 반응보다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이해가 된다”, “우리의 이야기구나”라는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었습니다.

*픽토그램이란? 

픽토그램 (영어pictogram, pictogramm, pictograph)은 “그림”을 뜻하는 라틴어 pict(us) 와 “글”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grámma 의 합성어로, 사물과 시설 그리고 행동 등을 상징화하여,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빠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나타낸 표의 문자이자 시각 디자인을 말한다.  – 위키백과-

 

아름다운재단의 상징색 주황색과 픽토그램으로 표현한 희망가게 대표 영상

 

그래픽 스타일을 바꾼 것도 그런 맥락이었구요. 픽토그램을 선택한 이유는 먼저 재단 쪽에서 제안을 주기도 했지만,  픽토그램이 모든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태이고 텍스트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전달의 측면에서 픽토그램이 가장 명료하게 전달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Q: 작업을 하면서 스토리보드도 여러번 바뀌고 디테일한 내용도 여러번 바뀌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이 힘들진 않았나요?

스토리보드가 세 번 바뀌었는데 여러번 바뀌면서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기 때문에 힘들었던 건 사실입니다. 과정이 힘든 부분이야 어느 작업이든 같을 겁니다. 궁극적으로 누구에게나 ‘합당한’ 작품이 나온다면 이런 부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첫 작업은 재단 분들에게 공개하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추석 연휴 전에 1차 편집을 마치고 편집본을 보는데 무언가 감동이 없었습니다. 전체적 룩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웠지만 무언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작업했던 스토리보드를 하나씩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해주고 있는 권수진 작가

 

잠시 작업을 멈추고 아름다운재단에서 출판한 <희망가게>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희망가게 창업주분들에 대해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충분히 조사하지 않고 제 나름의 생각으로 창업주분들의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만들었던 게 문제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한부모여성가장’을 소외 계층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힘든 분들이니까 도와줘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시각 때문에 스토리에 감동이 없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를 그늘로 표현했던, 최종 편집본에선 사용하지 않았던 컷.

 

희망가게 창업주분들이 창업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고, 이미 재능이 있는 분들을 아름다운재단에서 여러 과정을 거쳐 힘든게 선택했다는 점. 심사 이후에도 창업을 하기 전, 그리고 창업 후에도 엄청난 노력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진짜로 표현해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들이 짜잔,하고 도움을 받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충분히 도움을 받을 만한 능력이 있고, 그것이 가치있는 작업이라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 스토리보드. 아기자기 예쁘게 만들었지만 대폭 변경했던 컷.

 

추석이 지나고 재단에 내용을 전폭적으로 바꾸고 싶다는 의견을 드렸습니다. 다행히 재단측에서 너무나 흔쾌히, 오히려 고맙다고 하시며 지지해 주셨고, 그 때 스토리보드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계속 바뀐 스토리보드.

 

두 번째 스토리보드 + 희망가게 창업주의 자기소개서

좀더 결의(?)에 차 작업을 하다보니 스타일이 다소 비장해졌습니다. 아기자기 귀엽다가 갑자기 비장해지다보니 여기에서 생긴 부작용은 창업주분들의 고단한 삶, 사회적으로 부당한 편견을 받고 있는 부분이 지나치게 무겁게 그려졌다는 겁니다. 이러다보니 다른 방식으로 이 분들을 ‘다시’ 소외 계층으로 만들어버리는 문제가 생겼습니다(허허.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라는 표정이셨음)

창업주 캐릭터를 더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희망가게 창업 지원서

 

이 부분을 어려워하고 있을 때 희망가게 사업 담당 간사님께서 창업주분들의 자기소개서를 보여주셨습니다. 왜 창업을 해야 하는지, 창업을 통해서 뭘 얻고자 하는지, 창업 후에 본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이어질 수 있도록 무엇을 할 것인지(대출 상환 계획) 등이 적혀져 있었는데 그 내용을 읽어가다보니 창업주분들의 캐릭터가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데렐라’에서 ‘달려라 하니’로! 

익명의 누군가를 막연히 상상하면서 작업을 해 왔었던 겁니다. 자기소개서를 읽어나가다보니 “당당한, 자기 목소리가 강한, 고집도 센, 그렇지만 밝고 긍정적인” 이런 성격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하나 단어를 써 가면서 키워드로 뽑은 것은 “달려라 하니”, “기죽지 않는 오뚝이”였습니다.

캐릭터 설정을 위해 권수진 작가가 끼적인 낙서들. 달려라 하니, 오뚝이.

 

어차피 영상에선 15%밖에 표현이 안 되긴 하지만 그 15%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실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캐릭터, “달려라 하니”로 말이죠.

 (이미지 출처:Daum 영화)

 

세 번째 스토리보드 + ‘가족’을 다시 보다.

세 번째 스토리보드가 바뀐 이유는 가족에 대해 제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가족을 “엄마, 아빠, 자식”이라는 틀에서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부모여성가장’이라고 했을 때 기존 가족의 형태에서 균형이 깨진 것이므로 이 부분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빠 대신 ‘희망가게’나 ‘아름다운재단’이 이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스토리를 구상했던 거죠. 

가족을 “아빠, 엄마, 아이”로 구성된 거틀에 바라보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고 솔직히 밝히는 수진 작가.

 

간사님들과 두 번째 미팅을 갖고 가족의 형태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게 됐고, 인트로 부분이 과감하게 변경되었습니다. 열명 중 한 가정이 한부모여성가장이 있는 가정입니다. 엄마, 아빠, 아들만으로 구성된 가정 말고도, 노부모와 아이, 엄마 둘과 아이, 아빠와 아이, 아이 없는 가정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합니다. 인트로에서 이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러 형태의 가족이 나오고 그 중의 한부모여성가장의 가족에 포커스를 맞춰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수정된 최종 스토리보드의 시작 장면.

 

Q: 스토리보드가 바뀌면서 아이들에 대한 표현도 많이 바뀌었는데요.

처음 스토리보드에서는 아이의 고립된 모습을 길게 많이 보여줬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만 생각해보니 문제의 포커스를 아이가 방치되고 있는 것에 맞추는게 아니라 한부모여성가장이 양육과 일을 동시에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보통의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그러다보니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고, 거기에서 오는 결핍의 문제가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는 부분이란 말인 거죠. 여기에 주안점을 두고 아이의 고립된 모습을 길게 보여주는 장면은 과감히 생략하게 되었습니다.

지나치게 길게 표현되었다고 생각해 대폭 줄인 창업주 아이들의 외로움을 표현한 컷.

 

Q: 작업을 하면서 희망가게 창업주분들에 대한 생각도 바뀌셨는지? 

처음에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떤 트리거(trigger. 방아쇠, 계기)만 있다면 발산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는 분들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트리거 없이는 이 능력이 상실될 수 있는 재능이고, 이건 국가적인 손실인 거죠(!) 어떻게 보면 희망가게 사업 자체가 굉장히 똑똑한 사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 보시면 방울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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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스토리보드에선 이 방울을 눈물방울로 형태화해서 강조했었습니다. 처음에 이 방울을 만들었을 때는 ‘삶의 고통’, ‘아픔’을 상징하는 거였는데 이게 점차 ‘슬픔’이 아니라 ‘땀방울’을 의미하는 걸로 바뀝니다. 스토리보드가 바뀌면서 제가 희망가게라는 사업에 대해 깨닫게 된 지점이 바로 이 눈물방울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이 아닌 노력의 땀방울!

 

작품에서 보면 가슴에 손을 가리고 있는데 이 방울을 눈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노랗게 물든 방울을 보며 ‘내 땀방울’이라고 보여주잖아요. 이런 ‘당당한’, ‘떳떳한’, ‘노력하는’, ‘강한’ 엄마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희망가게 10주년 행사에 참여하신 소감과 못다한 이야기가 있다면?

이번 행사에서 창업주분들을 실제로 뵐 수 있었습니다. 창업주분들이 작은 공동체처럼 서로 십시일반하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모두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프로의식도 강하시고, 너무 잘 하시고, 그 능력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감동이었습니다. 스피치하시는 분들, 스피치하시는 분들을 위해 헤어와 메이크업을 해 주면서 서로 도와주시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희망가게 10주년 행사, 스피치를 진행하신 주옥자 창업주의 헤어스타일을 멋지게 손봐주고 계신 손미자 창업주. ^^*

 

어떻게 보면 공익적인 영상은 지루할 수 있고 딱딱할 수 있다는게 제 고정관념이었습니다. 이런 고정관념을 깰 수 있게 해 주신 아름다운재단과 희망가게 사업 관계자분들에게 감사드려요. 이번 작업은 어찌 보면 심각한 내용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덜 무겁고, 호기심 있게 볼 수 있고, 어깨에 힘을 빼고 볼 수 있는 영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그렇게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좋은 메시지를 담은 작업 많이 해 보고 싶습니다. ^^ (오히려 저희가 감사합니다~)

좋은 영상으로 희망가게 사업을 잘 표현해 주신 권수진 작가님, 소중한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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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댓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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