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의 공익활동⑥] 청소년의 존재를 지우지 말라 – 18세 선거권의 의미와 남은 과제

아름다운재단이 기획연재 <청소년이 만드는 작은변화, Z세대의 공익활동>를 시작합니다. 청소년들은 기후위기, 청소년인권, 페미니즘, 소수자 그룹과의 연대 등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공동체로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4주 동안 8편의 글을 통해 청소년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청소년 공익활동의 현재와 과거를 리뷰하고, 코로나 시대에 청소년 공익활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 연재가 청소년과 청소년 활동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을 해소하고, 청소년들을 우리의 동료 시민으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2018년 6월 13일 지방선거가 이루어지던 날의 비참함을 기억한다. 선거 당일 나는 투표소에 있을 수 없었고, 광화문 교보빌딩 앞의 청소년 참정권 요구 집회 현장에 있어야 했다. 집회 현장 옆에는 청소년 단체에서 모의투표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에게 청소년이면 모의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어떤지 물어봤지만,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만 18세였던 나는 올해는 꼭 선거권 연령이 낮아져 투표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허망한 기대일 뿐이었다. 그동안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해 싸워 온 과정들이 떠오르며 실제 투표를 못하고 ‘모의투표’ 정도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투표소 앞 청소년참정권 관련 시위 장면 (사진출처: 이은선)

우리의 분노와 언어가 모여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해온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청소년들은 나와 같은 허망함을 느꼈을 것이다. 18세 선거권은 최근 불거진 이슈가 아닌 청소년 참정권을 확대하기 위한 과제로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요구되어온 것이었다. 2002년 선거권 연령이 20세일 때부터 18세 선거권 운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2005년 선거권 연령이 20세에서 19세로 한 살 낮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초·중·고) 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투표할 수 없다’는 핵심적인 반대에 부딪쳐 18세로 낮아지지 못했다. 이후에도 선거권 이외에 청소년 참정권을 확대하기 위한 활동들은 이어졌다. 2008년, 2010년에는 청소년이 직접 정치에 출마할 수 없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며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 운동’이 있었다. 당시 출마 포스터에는 “못 뽑으니깐 나와봤다!”, “청소년 빼고 교육선거 웬 말?”등의 구호와 “입시경쟁 NO 다양&평등 교육으로”, “영어교육 정상화, 영어는 하나의 외국어일 뿐!”등의 다양한 공약들이 담겨있었다.

교육감 후보 기호0번 청소년 포스터 (사진출처: 이은선)

이전까지는 청소년 참정권을 확대하자는 요구가 주로 선거철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청소년 참정권이 박탈당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권리가 제한되는 것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꾸준한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후 2017년 본격적으로 청소년의 인권과 정치 참여를 가로막는 법 제·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꾸려졌다. 우리의 활동을 통해 선거권은 단지 하루 투표할 권리를 넘어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청소년 정당 가입을 요구하며 ‘입당 퍼포먼스’, 2018년 청소년이 투표하는 첫 선거로 만들기 위한 ‘청소년 삭발식과 거리농성’등 다양한 활동으로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요구해왔다. 그 결과 2019년 12월 27일 선거권 연령이 18세로 낮추어졌고, 2020년 총선은 청소년이 참여하는 첫 선거가 되었다.

오랜 기간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과정을 통해 청소년 인권을 뒷받침하는 논리와 언어가 두터워졌다. 18세 선거권에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닌, 18세 선거권을 통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청소년들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지 ‘최대한’의 정치적 권리 보장은 무엇인지 논의하게 되었다. 또한 18세 선거권을 요구하는 활동들이 모여 청소년 정치적 기본권을 비롯한 청소년 인권의 전반에 힘이 싣는 과정이 될 수 있었다.

18세 선거권은 어떤 의미를 남겼나

선거권 연령이 낮아졌지만, 청소년의 정치가 금기시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하다. 그러나 18세 선거권 보장은 ‘청소년은 정치해선 안 된다’, ‘학교가 정치적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오래된 장벽에 처음으로 균열을 내었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이 투표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생은 무정치적인 존재이고, 학교는 무정치적인 공간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에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이 가로막혀 있었다. 청소년 중 나이와 생일이 지난 기준에서 투표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그럼에도 선거권 연령 하향은 앞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또한 청소년이 정치적 존재로 호명 가능해졌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선거권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는 청소년이 동등한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여전히 많은 제약이 있다. 18세 선거권 보장을 계기로 청소년에게 더 많은 정치적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18세 선거권은 청소년 참정권 보장의 시작이다.

18세 선거권 보장을 환영하는 기자회견 (사진출처: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18세 선거권, ‘능력’과 ‘성숙’의 증명을 넘어

청소년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는 나이뿐만 아니라 여러 잣대가 존재한다. 선거권 연령이 더 낮아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청소년이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안 했는데 뭘 안다고’라는 식으로 말하고, 정작 찬성하는 사람들도 ‘18살 정도면 어른이고 국민의 의무도 다하고 똑똑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충분히 똑똑하지 않으면 선거나 정치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모든 사람이 주권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는 민주주의 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성숙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조건부 권리가 아니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만 제한된 정치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고 알기 쉽게 정보를 공개하기보다는, 정치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탓하며 더 장벽을 높이려 들 것이다. 미성숙하기 때문에 정치에 참여할 수 없고, 아직까진 정치 참여보다는 정치 교육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성숙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목소리가 대변될 수 있어야 하고, 힘이 없기에 더 많은 권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낫다. 이렇게 되었을 때,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정치가 가능해지고 많은 사람이 주체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청소년 선거권 요구 행진 (사진출처: 이은선)

우리가 18세 선거권이 통과되기를 바랐던 이유는 18세면 군대도 갈 수 있고, 면허도 딸 수 있고, 세금도 낼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의무를 수행하고 있기에,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박탈되었던 청소년의 사회적 지위를 되찾음으로써 당신의 동료 시민으로 살아가겠다는 외침이다. ‘18세 정도면 성숙해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식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의 남은 과제들

시민으로서 삶에 괴리감을 주는 학생인권 현실의 변화

대다수의 청소년이 학교에 다닌다. 학교 안에서도 청소년은 시민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선거권 연령이 하향되었음에도 상당수 중·고등학교는 여전히 사회 활동, 정치 참여 등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규칙을 갖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민주적인 학교가 되려면 이런 규칙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비롯한 실질적 권한이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학생의 언론·표현·집회의 자유 등 기본적인 권리를 명시한 법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일환으로 학생인권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청소년도 자유롭게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 마련

대한민국의 정당법 제22조는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로 발기인 및 당원의 자격을 명시하고 있다. 정당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18세 미만 청소년들은 합법적으로 정당 가입을 할 수 없다. 국가가 불필요하게 당원의 자격에 제한을 두는 것은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을 규제하는 것이다. 한국 외에 민주주의를 택한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각 정당이 자체적으로 가입 기준을 정한다. 관심 있는 누구나 정당에 가입할 수 있고, 10대부터 정당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정당 안에서 청소년이 활동할 수 있다면, 청소년 대중의 의견을 모아 입법 과정에 반영하는 통로가 될뿐더러, 정당에서 청소년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청소년 집회의 자유의 요구 (사진출처: 이은선)

선거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 보장, 선거운동 연령 제한 폐지

선거 운동은 각 정당 후보들의 선거 유세에 참여하는 것 이외에도 SNS상에 정치인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표하는 글을 쓰는 거나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말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이처럼 선거 운동의 자유는 선거 과정에서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자유인 동시에, 표현에 대한 자유이다. 하지만 18세 미만인 청소년은 선거 과정에서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마저 제한된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한 청소년이 SNS에 특정 정당과 후보에 대한 지지하는 글을 게시했다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받고, 경찰에 소환 조사를 받은 일도 있었다.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의견 표현과 토론, 정치 참여를 ‘범죄’로 만드는 선거법은 바뀌어야 한다.

스스로 대표할 권리 보장, 피선거권 연령 하향

‘대표자를 뽑을 권리’를 넘어 스스로가 ‘대표할 권리’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인이나 사회적 리더란 남성, 나이 많은 사람, 고학력자, 비장애인 등 지극히 제한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높은 피선거권 연령(대통령 40세 이상, 국회의원·지자체장 등 25세 이상)은 정치적 대표가 다양하지 못한 현실에 일조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이 정치적 대표자나 결정권자가 될 수 없다는 편견도 담고 있다. 피선거권은 청소년 집단의 이익 대변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더이상 청소년에게 정치는 해롭다거나 정치보다 공부가 더 우선이라는 말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없다. 청소년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이야말로 시민으로서 삶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더욱 폭넓게 보장하는 법·제도를 만들고, 청소년의 자유로운 정치 활동과 토론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18세 선거권’은 청소년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고 청소년을 시민으로 존중하는 문화와 질서를 만드는 일의 시작이다.

글 | 이은선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상임활동가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일러스트 | 이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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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의 공익활동③] 청소년 사회참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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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의 공익활동⑥] 청소년의 존재를 지우지 말라 – 18세 선거권의 의미와 남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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