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에서 만난 사람들

제주 올레에서 만난 사람들

제주 올레길을 가다

지난 5월 나 대신 내 짐을 나눠 들어준 동료들 덕분에 조금 긴 휴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생각 없이 쉬자며 집에서 며칠을 뒹굴거리다가, 문득 내가 최근 2년 가까이 서울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하는 생각에 밤에 부랴부랴 비행기를 예약하고, 바로 다음 날 올레길을 걷기 위해 제주도로 출발했습니다.

처음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혼자 사색하고, 독서하며, 고독하게 걸어야지. 그러면서 나를 정리하고 만나는 여행이 될 거야라고 다짐하며 900페이지가 되는 두꺼운 책도 한 권 배낭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잘 모르는 생각이었는지… 제주도 올레길은 저를 위해 더 많은 만남을 준비해놓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화산섬 제주, 그리고 올레길

새삼스럽지만 제주도는 정말 아름다운 길과 경치를 품은 섬입니다.
처음 가본 올레길은 각 코스마다 이전에 몇 번 가봤던 관광지와는 또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얼굴과 개성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제주도의 변화무쌍한 기후와 만나 같은 길에서도 시간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매일 화장한 겉모습만 보다가 어느 날 그의 민낯과 속살을 보고, 내면의 이야기를 들게 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잘 아는 것처럼 제주도는 화산섬입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치 곳곳에는 그 옛날 뜨거운 화산이 분출해 만들어낸 흔적들이 크게 한 몫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내 안의 열정을 더 뜨겁게 달궈 폭발시키면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까?
자연스레 스스로의 열정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바로 위의 사진 중 중간 오른쪽 사진은 섬이 아닌 바다안개에 싸인 산입니다. 그리고 가장 아래 두사진은 무언가 닮지 않았나요? 왼쪽 사진의 섬은 누워있는 여성을, 오른쪽 사진의 섬은 고래를 닮았다고 합니다. ^^)

길 위에서 자신 돌아보기

하루에 6시간 정도를 천천히 걸으며 나 자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내 직업, 내 역할, 내 나이, 내 재산(ㅜㅜ) 등등. 그런데 처음엔 집중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사색을 많이 해야지 하면서 걷기 시작한 길이, 계속 걷다 보니 점점 생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그냥 걷는 것과, 걸으면서 보이는 것에만 집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길 끝에서 하나의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앞을 보고 걸을 때와 끝에서 뒤돌아 본 내가 온 길은 다른 길 다른 모습이다.”
뒤돌아 본 길은 걷기 전의 그냥 길이 아니라, 내 시간과 생각과 경험이 묻어 있는 나만의 특별한 길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보지 않은 어떤 길을 걷는다는 것을 바로 이렇게런 의미를 만드는 일이구나 라는 평범하지만 새삼스런 깨달음이었습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길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길을 걷고 있는 사람, 쉬고 있는 사람, 그 길위에서 일을 하는 사람. 오랫동안 직장을 그만두고 바로 내려온 사람, 친했던 동료에게 사기를 당하고 마음을 추스르러 온 사람.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 군대에 가려고 준비 중인 사람, 출장을 온 사람, 그냥 제주도가 좋아서 아예 살려고 내려온 사람.

만났던 그 모든 사람들은 모두 같은 길 위에 있었고, 모두 크고 작은, 같으면서도 다른 짐을 어깨에 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짐에 따라 길에 대한 감상과 기억은 모두 달랐습니다. 하지만 모두 같았던 것은 서로 그 길에 대해 묻고, 아는 데로 답하고, 열심히 들으면서, 이를 통해 추억과 경험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모두가 조금은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작가가 2차원의 세상을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한 생명은 점으로 태어나, 원으로 자라고, 그가 이룬 성취와 지위에 따라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등으로 살다가 다시 점으로 돌아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 2차원의 세상에 만일 연필과 같은 3차원 입체가 지나간다면 2차원 생명들은 이를 점으로 태어나 육각형으로 살다가 사라진 하나의 생명으로만 인식할 것이랍니니다.
참 멋지고 통찰이 넘치는 상상력과 비유입니다.

내가 길에서 만난 그 모든 사람들도 어쩌면 내가 인식하지 못할 뿐 이 세상을 지나는 더 높은 차원의 어떤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만일 그들의 전(全) 모습을 내가 인지할 수 있다면,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확장되듯이, 내 인식의 차원이 한단계 올라갈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 길에서 나는 내 인식의 차원을 한단계 높일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만나고 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살면서 수많은 길을 또 걷게 될 것입니다. 이제 좀 더 기꺼이 그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 걷는 순간에 집중하면서, 그리고 또 때때로 웃으며 쉬면서…

모금배분국 한태윤 간사

변화사업국ㅣ한태윤 국장

나무와 대화할 수 있는 그 순간을 꿈꾸는 잠꾸러기. ‘영원이란 지나가는 순간순간’이란 말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살고싶은 게으름뱅이. 바라보기, 공감하기, 행동하기의 나눔 3박자의 실천을 돕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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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재주소녀 댓글:

    제주도 올레길. 좋은 여행하셨네요. 여행기와 사진을 보니 당장이라도 날아가 그 길을 걷고 싶은 맘이 생깁니다. 덕분에 좋은 여행했네요 🙂

  2. 느보산 댓글:

    좋아보여요. 저도 가고 싶네요. 제주도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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