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이프로젝트] #1.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어른이 될 거야

안녕하세요. 열여덟 어른 캠페이너 ‘허진이’입니다. 보육원 퇴소 이후, 저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받았던 진심이 딤긴 말과 따뜻한 관심을 저와 같은 친구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허진이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보호종료 당사자인 청년들과 함께 아동양육시설 아동들을 대상으로 자립 강연을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요. 본 프로젝트를 통해 강연 당사자들도 보육원에서의 삶과 현재의 나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 삶과 관점을 담은 에세이를 전해드리려 해요. 평범한, 보통의 청춘들의 삶이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시작합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식사시간이었다. 아마도 나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그 날은 내가 보육원에서 퇴소하는 날이었다. 보육원에서는 점심식사부터 배식을 하나 덜해도 되는 날일 뿐이었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이 태어나서부터 19년을 지내 온 집을 나왔다. 꼬박 쌓인 짐은 36인지 캐리어 하나에 모두 담겼다. 누군가는 나를 여행자로 볼지도 모르겠다. 근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살아본 적 없는 세상으로 떠나는 건 매한가지니까. 다만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퇴소 날, 기부자님이 오직 나를 위해 선물해 주신 첫번째 옷이 내 캐리어에 담겨있었다

 

자립생활 두 달이 되어갈 때 쯤, 미사를 보다 신부님의 강론 첫 마디에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주변에 나의 편이 너무 없다고 느끼시나요?”

나의 상황에 대한 어떠한 인지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때.. 신부님의 첫 마디에 애써 모른 척해온 나의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자립 1년차가 되면서 가지고 있던 돈이 모두 바닥났다. 설상가상으로 성적 관리를 못한 탓에 기숙사 심사에서도 탈락하게 되었다. 앞이 캄캄했다. 경제적 빈곤은 남이야기 인줄만 알았다. 무엇보다 그동안 나의 행실에 대한 책임이었기에 더욱 비참했다.

그렇게 좌절하던 때에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어른’을 만나게 되었다. 사는 내내 늘 나는 ‘의미 있는 어른’을 필요로 했다. 정서적으로 포근함을 줄 수 있는 사람보단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한 조언을 해 줄 어른 말이다.

그렇지 못한 현실에 차선책으로 책과 TV를 통해 영향을 주는 어른을 만나려했다. 그래서일까 자립생활 초기에는 자서전이나 자기계발서류의 책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내게 첫 ‘의미 있는 어른’이 되어주었던 사람은 시설 선배였다. 개인 사업을 하면서 보육원 후배 후원에 힘을 쏟고 계셨던 분이라고 그렇게만 알고 있던 분이었다. 

당시 거주할 곳이 없어 시설 근처 자립생활관에서 생활하던 때, 우연히 시설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난 선배님께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마침 선배님은 ‘마음으로 함께하는 딸이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계셨고, 눈을 떴을 때 내가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나와 아빠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추진력이 좋은 아빠 덕에 그날 바로 아빠는 나를 본인의 가정에 소개했고, 모두 환영해주셨다. 늘 엄마, 아빠에게 감사인사를 드렸고, 보내주신 사랑에 은혜를 꼭 갚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주신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으로 보답하려 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진이 너도 그런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 지금 주는 나의 마음을 충분히 받았으면 좋겠어” 라고 말씀하셨다. 세상 어떤 말보다 감동적이고, 내게 필요했던 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난 보답하려는 마음보단 편안히 기대기 위한 노력을 했다. 진정 가족이 되어가는 듯 했다.

내 인생의 수많은 ‘의미 있는 어른’을 선물해 준 대학시절

 

거짓 없이 살아가게 해준 또래의 어른도 있었다. 바로 친구들이다. 대학생활 내 행동은 어떤 상황에서든 부자연스러웠다. 다소 과잉된 행동과 언어, 자기 얘기를 통 꺼내지 않는 비밀스러움, 사계절 짐을 모두 들고 온, 본가에 절대 가지 않는 미스터리한 아이로 보여 졌을 것이다.

친구들과 진솔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마음에 솔직하게 얘기했다. 친구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어.” 

친구들은 담담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오히려 내 얘기를 듣고 우는 친구들이 있었다면 그게 더 어색했을 거다.

그렇게 내 인생에는 어른들이 하나 둘 늘었고, 그 어른들과 함께 나 역시도 어른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시시각각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어떤 때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가 되기도, 도움을 주는 어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의 상태로만 머무르지 않도록 해준 의미 있는 어른들 덕에 나는 자립생활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의미 있는 어른 말이다. 자립을 앞둔 후배들에게 의미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더 많은 보호종료 당사자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보호종료 당사자들이 들려주는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후배들도 지혜 속에서 더 큰 꿈을 꾸길 바라본다. 

이 마음을 담아 열여덟 어른 <허진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글 / 사진. 허진이 캠페이너

 

나눔사업국 1%나눔팀ㅣ서지원 간사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이다(마르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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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혜은 댓글:

    허진이 프로젝트*열여덟 어른 프로젝트를 마음 다해, 응원합니다.

  2. 문성윤 댓글:

    네온처럼 반짝이지는 않아도
    아늑함을 주는 촛불처럼.
    꽃집의 풍성한 꽃다발은 아니어도
    스스로 아름다움을 발하는 들꽃처럼
    의미있는 당신의 삶을 가꾸시길
    응원합니다.
    축복합니다.

  3. 청포도 안지안 댓글:

    허진이 프로젝트 글을 읽으면서.. 너무 공감되었고, 뭉클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희망차고 벅찬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세상에 우리를 보여줄 때입니다. 그 누구도.. 보호종료아동도 아닌, 진짜. ‘나’를 보여줄 때입니다. 프로젝트 이름에 당당히 자신들의 이름을 걸었던 아름다운재단을 응원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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