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군자 할머니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배웁니다.

안녕하세요. 아름다운재단에서 한 달동안 인턴으로 활동한 김영인입니다. 7월 23일 故김군자 할머니의 3주기를 추모하고자 할머니가 잠들어 계신 곳에 방문했습니다. 모든게 처음인 저에겐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간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인턴의 눈으로 바라본 김군자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故김군자 할머니에 대한 첫 기억은요!

처음 아름다운재단에 들어왔을 때 1층 벽면에 있는 할머니의 사진에 눈길이 갔습니다. 할머니의 사진에 담긴 사연을 듣게 된 건 오리엔테이션을 통해서였습니다. 故김군자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수양아버지의 심부름을 가다가 17살에 일본군에게 끌려갔습니다. 이후 2007년, 미 하원 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용감하게 본인의 피해 사실을 증언하셨고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채택됩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속 이야기 역시 할머니의 증언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김군자 할머니

할머니는 장사를 해서 힘들게 번 돈과 정부 지원금을 모아 총 1억을 보육 시설 아동의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재단에 기탁하셨습니다. 할머니가 주신 이 소중한 돈은 아름다운재단 1호 기금인 ‘김군자할머니기금’이 되었고, 보육시설 퇴소 청년 253명의 장학금으로 지원되었습니다.

“내가 고아였거든, 배운 거라곤 야학 8개월이 전부야. 어려서 부모를 잃고 못 배운 탓에 삶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만 같아서 조금 더 배웠더라면 그렇게 힘들게 살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어. 가난하고 부모 없는 아이들이 배울 기회만이라도 갖도록 돕고 싶어. 근데 너무 작은 돈이라 부끄럽고 미안해.” 故김군자 할머니의 삶을 전해 들으며 재단에서 할머니가 ‘용감한 증언자’이자 ‘기부 박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매년 故김군자 할머니의 기일이면, 아름다운재단 직원분들은 할머니가 계신 곳에 방문하여 추모하는 문화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직접 이야기를 나눴던 간사님들, 비록 직접 뵈었던 적은 없지만 할머니의 나눔의 의미를 새기며 재단에서 일하시는 간사님들 모두에게 할머니의 사연과 기부는 남다른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故 김군자 할머니 처음 뵙겠습니다.”

지난 7월 17일, 故 김군자 할머니의 3주기를 앞두고 저도 재단 간사님들과 함께 할머니가 계신 곳에 다녀왔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흉상이었습니다. 흉상의 진지한 표정에서 일본에 사과를 촉구하는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고, 수요 집회에 다녀온 일도 생각났습니다. 평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잊지 않았고 나름 관심도 있다고 생각해왔었지만 할머니들이 잠들어 계신 곳에 다녀오니 그들의 삶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추모의 벽을 둘러보고 있는 김영인 인턴

추모의 벽을 둘러보고 있는 김영인 인턴

역사관 밖에 붙어있는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 액자, 그리고 추모정원에서 본 조각들로 할머니들의 피해와 힘들었던 삶을 모두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추모공원의 노란 나비들에 적힌 메시지를 보면서 여전히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고 저도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역사관을 둘러보면 할머님들의 삶과 아픔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코로나로 인해서 둘러볼 수 없어 더 아쉬웠습니다. 다음에 시간을 내서 꼭 방문해보려 합니다. 

주변을 둘러본 뒤 재단의 직원분들과 함께 故김군자 할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추모의 정원에 있는 할머니의 비석에 꽃을 놓고 묵념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할머니의 나눔이 많은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념했습니다.

故 김군자 할머니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배웁니다.

故 김군자 할머니를 뵈러 다녀오고 관련 영화도 보고, 관련된 많은 글들을 살펴보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생애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김군자할머니기금’의 장학생들도 나눔을 실천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이렇게 세상이 변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할머니의 정신을 이어가며 여러 변화를 이루고 있는 재단의 직원분들이 더 빛나 보였습니다.

“할머니, 하늘에선 편안히 행복하세요. 저는 할머니를 포함한 많은 할머니들이 일본의 사과를 받고 마음의 짐을 놓으실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습니다. 할머니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글ㅣ김영인

나눔사업국 커뮤니케이션팀ㅣ박주희 간사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_ 김금희 '경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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