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주거복지 지원사업] 쉼터퇴소경계선지능청소년과 함께하는 커뮤니티하우스, 느린 여정의 시작

‘소유’가 아닌 ‘권리’, ‘건물’이 아닌 ‘안식처’라는 주거의 가치를 담아 진행된 사업 〈2019 주거영역 통합공모 ‘집에 가고 싶다’〉. 주거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주거권 옹호와 더불어 연구 활동에도 초점을 둔 사업은 주거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적 영역으로 정의했던 주거를 공공 권리로 전환하려는 아름다운재단의 도전이었다. 그 결과로 선정된 6개 단체의, 청소년미혼모 및 청소년미혼부부 등 일시적인 거처가 필요한 청소년미자립가정, 아동청소년을 양육하는 한부모가정, 구로구 쪽방 등 최저주거 기준 미달 비주택 거주가구 등을 대상으로 지원 활동이 시작됐다.

좌측부터 경기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 박현동 관장, 이수선 간사, 이민혁 간사, 황대연 간사

경기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은 그 중 한 기관으로 쉼터 퇴소 청소년 주거권 공론화 캠페인과 쉼터 퇴소 청소년 자립지원 정책을 제안했다. 박현동 관장은 보호 종료 아동과 쉼터 퇴소 청소년의 다르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양육포기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지원, 복지사각지대로 내몰리는 쉼터 퇴소 청소년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들을 구체적으로 도울 근거 만들기에 몰두했다. 특별하거나 예외적 상황이라는 표식을 달지 않고 자립을 지원 받는 구조 세우기가 궁극의 목표였다. 청소년과 함께 길거리로 나가 손바닥캠페인을 펼치고 경기도의회에 가서 적극적인 피케팅을 진행하며 서명도 받았다. 마침내 2019년 7월, 경기도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의 옹호사업에 힘입어 쉼터 퇴소 청소년 대상의 국토교통부 훈령이 바뀌었다. 10여 개월이 흐른 2020년 4월 22일, 경기도의회는 일부조례계정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1년 동안 가장 크게 변화한 건 청소년복지지원법 시행규칙 개정입니다. 쉼터를 2년 이상 이용했고 퇴소한 지 5년이 지나지 않은 18세 이상 청소년이 LH(한국토지주택공사)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도록 지원 근거가 마련된 거죠. 지자체에 쉼터 누적 2년을 증빙하는 ‘입소기간확인서’만 제출하면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는, 시중가 절반 수준의 월셋집을 얻을 기회가 생긴 겁니다.”

법령이 위기에 놓인 자립 청소년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는다. 다만 좀더 안전한 미래로 가는 ‘가능성’을 열 뿐이다. 그로써 복지사각지대에 볕이 든다. 경기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은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이 변화의 기류를 한껏 바투 잡았다. 더 지속적이고 직접적인 지원사업을 고민할 때였다. 현장으로 뛰어들기 위해 변화의 토대를 단단하게 밟고 섰을 때 법령만으로는 기회를 잡기 어려웠던, 미처 가시화되지 못한 ‘경계선지능(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 지능지수가 71~84 수준으로 흔히 느린 학습자라고 불림)’ 청소년과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재단 <2020 청소년 주거복지 지원사업> ‘쉼터퇴소경계선지능청소년과 함께하는 커뮤니티하우스’ 여정의 시작이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 미래를 바꾸는 맞춤지원

“경기도청소년쉼터협의회 총회에서 32개 쉼터 이용 경계선지능청소년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봤더니 많은 곳은 30~35%, 적은 곳은 15~20%더라고요.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평균 20% 정도라고 할 때, 중장기쉼터(10명 정원)와 단기쉼터(15명 정원) 평균 인원을 12명으로 잡으면 3~4명의 경계선지능청소년이 이용하는 셈이죠. 그걸 토대로 쉼터 당 연인원을 최소 100명으로 예상하면 1년에 20명, 아무리 적게 잡아도 5명이 존재하고요. 경기도를 모집단으로 둔 추산을 끝내니 전국 150개 쉼터의 누적된 경계선지능청소년이 퇴소 후 어떻게 살아갈지 덜컥 겁이 났어요.”

구체적인 상황을 알아갈수록 마음이 급해졌다. 살기 위해 탈출한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쉼터퇴소청소년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현동 관장이었다. 그나마 현실에 적응하는 청소년은 쉼터 자원을 이용하며 일자리를 찾고 학업을 이어나가지만 경계선지능청소년은 달랐다. 그들에게 자립은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다. 상당수가 이 쉼터 저 쉼터를 회전문 돌 듯 전전하다 나이가 들면 노숙자센터로 흡수됐다. 현재의 지원체계 안에선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니면 결국 노인복지서비스(센터)에 의탁할 수밖에 없는 게 수순. 혹자는 이제 고작 청소년의 삶을 너무 극단적이고 부정적으로 단정 짓는 게 아니냐고, 개개인의 가능성을 기질적 상태 하나만으로 판단하는 건 섣부르다고 힐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박현동 관장은 바로 그 기질적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지원체계가 문제라고 강조한다. 정상범주로 재단한 환경에선 전혀 놀랍지 않은 미래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경기도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의 ‘쉼터퇴소경계선지능청소년과 함께하는 커뮤니티하우스’ 지원사업이 절실했다.

“지능검사에서 70 이하인 경우 지적장애등급을 받아요. 85부터 평균범주에 들어가고요. 경계선지능은 바로 그 사이, 71부터 84까지 해당합니다. 최근엔 그 대상자들을 ‘느린 학습자’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공부할 때도 일할 때도 많이 느려요. 그래서 이들과 만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태도가 ‘기다림’입니다. 그저 느릴 뿐이기에 그 속도에 맞춰 머물러주는 게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죠. 하지만 요즘처럼 속도와 효율이 중요한 시대엔 그건 굉장히 불리한 조건이잖아요. 이해에 기반 한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도태되기 쉽고, 결국 경계선지능청소년의 삶을 좌우하게 됩니다.”

담당 실무자인 이민혁 간사는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책으로 배워 알고 있던 경계선지능의 현실과 맞닥뜨렸고 ‘경계선지능’을 단순히 ‘조건’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일상 곳곳에 포진된 매순간의 장벽이라는 걸 체감했다.

2020년 3월 6일부터 4월 16일까지 경기도 내 쉼터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지원 대상자를 모집한 뒤 초기면접과 사례심의위원회를 통해 총 다섯 명의 청소년을 선정, 지난 5월 6일 각자의 원룸에 입주하기까지 석 달이 흘렀다. 지원 대상 청소년과 만난 지는 이제 한 달여 남짓, 2001년 생(만 18세)부터 1998년생 후기청소년들로 구성된 지원 대상자들과 친밀감을 쌓고 일상의 소소한 방법을 나누는 일이 현재의 과제다. 아직은 각각의 욕구, 자립의 동기, 심신의 건강을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럼에도 매번 ‘다섯 명 모두 이렇게도 다르네’ 새삼 놀란다. ‘경계선지능’이 누군가의 특질일 순 있어도 그것만으로 이뤄진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가슴 깊이 되새기는 순간이라고 이수선 간사는 이야기한다.

“자신이 살 집을 함께 고르고 계약서를 같이 작성하고 필요한 것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할지 의논하며 자립을 돕고 있어요. 집단생활을 하다 갑자기 혼자 지내게 됐을 때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울 수도 있으니 외출을 권하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미션을 주죠. 물론 대답도 느리고 행동도 느리고 정리하고 일상 꾸리는 게 힘들다고는 해요. 그런데 하루하루 달라지는 게 보여요. 이렇게 했어요, 라고 사진을 찍어 보내 주면 그 노력이 보이니까 마음이 뭉클하죠. 저마다의 이야기와 그만큼이나 다른 자립 동기를 가진 다섯 청년과 더 잘 만나고 싶어요.”

지원을 안전지대 삼아 자립 시도하기

함께 할 청년들이 경쟁과 효율에 치어 무엇도 시도하지 못한 채 포기하는 삶에서 멀어지기를 바란다

 

각자 독립해서 살되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마을)공동체. 쉼터퇴소경계선지능청소년과 함께하는 커뮤니티하우스가 그리는 모습이다. 이른바 ‘따로 또 같이’를 수행하려면 안정적 자립 훈련이 필수다. 주거와 일상생활자립은 물론 경제와 심리적 자립까지 구축하려면 안돼요, 못해요, 안할 거예요, 라는 말이 익숙한 지원 대상자에게 낙담하지 않고 동기를 부여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단단하게 버텨주는 존재. 황대연 간사는 그래서 무서웠다.

“지원 대상자가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죠. 지원을 받아놓고 대상자를 뽑아놓고 잘 못하면 어떡하지, 겁이 났죠. 그래서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책과 논문을 읽고 토론하며 함께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안 되면 어떡하지, 걱정했던 게 그냥 (어려운 이 일을) 하기 싫었던 거였나, 생각했죠. 신기하게도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고 나서 조금씩 달라졌어요. 막연하게 낯선 존재로 멀리 둔 이들과 부딪치고 실질적인 삶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면서 두려움이 기대로 바뀌었어요. 상황과 조건이 불변하지 않다, 생활하는 데 덜 불편하도록 학습하고 반복하면 개선된다는 가능성 때문이었죠. 저의 이런 변화를 다른 사람들도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생겼습니다.”

문제해결에 초점을 두기보다 지원 대상자의 강점 강화를 고민하는 것. 성취를 통한 만족 경험이 0순위 목표이기도 하다. 쉼터 퇴소 경계선지능청소년이 ‘나도 자립할 수 있어, 해봤어’라는 가능성을 거머쥘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지다. 박현동 관장은 취업이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사실 지원 대상자들이 몇 번이고 마주할 거절과 실패, 그로 인한 무기력함이 무섭다. 자립 공간으로 마련한 원룸에서 갇혀 지낼까봐 불안하다.

“혼자 밥해먹기, 빨래하기, 주민센터 이용하기 등과 상담지원을 통한 일상생활자립에 익숙해지면 진로탐색과 직업훈련을 가질 거예요. 저희 기관과 MOU 체결한 의정부 관내 소상공인협회나 지하상가 상인회 등과 협력해 인턴제를 고민 중입니다. 6월부터 30일 이내 단기간 아르바이트 구직 작업을 시작해 보려고요. 일종의 인큐베이팅 과정으로 실험해 보는 거죠. 그걸 통해서 이후 향방이 달라질 거예요. 앞으로 1년간 지속될 지원이니까 그동안 서로 지치지 않고 각 지원 대상자에게 맞춤한 경제자립 방법을 모색하면 좋겠습니다.”

2020 청소년 주거복지 지원사업의 쉼터퇴소경계선지능청소년과 함께하는 커뮤니티하우스를 경험한 이들이 경쟁과 효율에 치어 무엇도 시도하지 못한 채 포기하는 삶에서 멀어지기를 바란다. 쉼터퇴소경계선지능청소년의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서 출발한 도전과 모험이므로. 그것은 결코 실패를 극복하는 서사로 둔갑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과 저것으로 나뉘지 않는, 경계와 경계 사이 혹은 경계선 그 자체인 존재의 증언이자, 조금 다른 사람의 있을 법한 이야기다.

글 우승연ㅣ사진 이현경

아름다운재단은 [청소년 주거복지 지원사업]을 통해 청소년쉼터 퇴소 청소년이 안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확립될 수 있도록 정책제안 활동을 하는 동시에 주거비를 지원하고, 특히 혼자서 자립하기 힘든 경계선지능청소년을 선정하여 주거지원과 함께 자립교육과 취업연계, 심리정서치유 프로그램, 일상생활 교육 등을 지원합니다.

※ 이 사업은 경기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과의 협력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변화사업국 협력사업2팀ㅣ전서영 간사

아이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꿈꾸는 다음세대' 영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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