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장애아동친환경DIY보조기기지원사업] 골판지로 장애아동 보조기기를 만든다고요?

개발된 DIY 보조기기를 조립하는 자문위원

“이렇게 접어서 조립하면 되나요?”

“되게 깊숙이 끼워야 하는군요. 생각보다 빡빡하게 들어가네요.”

“이렇게 딱 들어맞아야 견고하니까요.”

“가볍긴 정말 가볍네요.”

다 큰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골판지를 접고 끼우며 열심히 조립을 한다. 대화 내용만으로는 무슨 조립식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 같은데 말투는 세상 진지하다. 그럴 만도 하다. 이들이 만드는 것은 키덜트 장난감이 아니다. 장애아동의 발달을 도와줄 소중한 보조기기이다.

개발된 균형훈련보조기기를 조립하는 모습
개발된 DIY 보조기기를 조립하는 자문위원개발된 DIY 보조기기를 직접 조립하는 자문위원과 관계자들

어떤 독자들은 ‘응? 골판지로 무슨 보조기구를 만들어? 그래봤자 택배 박스 같은 거잖아?’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장애아동 보조기기는 일반적인 가구나 장난감보다도 훨씬 안전하고 튼튼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 기기들을 직접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일단 딱 보기에도 골판지 맞나 싶을 정도로 견고하다. 심지어 그냥 보조기기가 아니다. 가벼워서 이동과 보관이 편하고,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게 예쁘다. 쓰레기를 줄일 수 있어 친환경적이까지 하다. 심지어 일반 제품에 비해서 생산 비용마저 저렴하다. 이것은 바로 ‘친환경 DIY보조기기’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의 저녁,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센터 건물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 개발한 기기를 선보이는 자문회의가 열렸다. 사업을 지원한 아름다운재단과 시행한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센터, 기기를 만든 개발업체는 물론 관련 전공 교수들과 어린이집 교사까지 한 자리에 모였다.

번쩍 들어올릴 정도로 가볍고, 성인이 써도 될 정도로 튼튼하다

2019년에 새로 개발된 균형훈련보조기기 사진

균형훈련보조기기

2019년에 개발된 좌식형 착석보조기기

좌식형 착석보조기기

이번에 만드는 친환경DIY보조기기는 2가지다. ‘균형 훈련 보조기기’와 ‘좌식형 착석보조기기’. 균형 훈련 보조기기는 바닥이 둥근 배처럼 생겼다. 장애아동이 위에 올라서거나 앉으면 균형을 잡기 위해 계속 힘을 줘야 한다. 좌식형 착석보조기기는 좌식 의자인데 등받이 쿠션에 벨트가 달려있어서 장애아동이 앞으로 넘어지지 않고 오래 앉아있을 수 있다.

이 두 기기는 모두 뇌병변 아동들의 발달을 위한 것이다. 뇌병변 장애를 겪는 아동들은 근육을 자유롭게 쓰기 어렵다. 그러나 그럴수록 운동을 많이 시키지 않으면 근력도 약화된다. 특히 어릴 때부터 다양한 운동 기술을 익혀야 이후 삶의 모든 측면에서 독립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중요한 장애아동 보조기기들은 대부분 MDF나 합판 등의 목재로 만들어진다. 이런 경우 접착제에서 포름알데히드 같은 유해물질이 나올 수 있다. 버려진 기기는 재활용으로 폐기할 수도 없다. 게다가 목재이다 보니 성인이 들기에도 많이 무겁다. 안 그래도 아이를 돌보느라 매일 무리하게 근육을 혹사하는 장애아동 부모들의 삶이 더 무거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과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센터는 지난해부터 친환경DIY보조기기를 개발해 왔는데, 오랜 고민 끝에 찾은 대안이 바로 골판지였다. 골판지는 아동과 지구의 건강에 모두 이롭고 목재보다 훨씬 가볍다. 기존 기기들보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실제로 자문회의 현장에 놓여진 친환경DIY보조기기는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들거나 옮길 수 있었다. 그렇다고 튼튼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성인이 써도 될 정도로 견고하다. 제품 개발자들은 “기기를 써 보아도 된다”며 흔쾌히 자문위원들에게 사용을 권했다.

혹시 망가뜨리는 거 아닐까 겁내면서 균형 훈련 보조기기에 조심조심 올라가보았는데 기기는 거뜬하게 성인의 몸무게를 버텨냈다. 경사가 꽤 가파르기 때문에 가만히 서있으려 해도 다리에 힘을 주고 균형을 잡아야 했다. 헬스장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헬스장에서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흔들흔들 좌우로 움직이는 것이 마치 재미있는 놀이처럼 느껴졌다.

장애아동의 사용 경험을 반영하는 꼼꼼한 테스트

개발중인 균형훈련보조기기를 장애아동이 직접 사용해보는 사진입니다.

개발중인 DIY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장애아동

친환경DIY보조기기는 여러 골판지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 부품은 10여개의 골판지를 두껍게 붙여서 만들어졌다. 이런 부품들을 적당히 접고 제 위치에 끼워 뼈대를 세운 뒤 그 위에 쿠션을 씌우거나 붙이면 뚝딱뚝딱 보조기기가 완성된다.

이렇게 해서 자문위원들이 보조기기를 조립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0분. 처음이라 서툰 데다가 꼼꼼하게 제품을 들여다보면서 조립한 걸 감안하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 그 동안에도 자문위원들의 의견과 질문은 쉼없이 이어졌다. 주로 개선사항에 대한 내용이다.

자문위원들은 “조립하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만들면 좋겠다”, “각 부품에 접는 방향을 표시해달라”, “자세한 유의사항이나 활용방법도 설명서에 담자”, “좌식형 착석보조기기의 벨트가 좀 까슬까슬한데 피부가 쓸릴 위험은 없나” 등등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회의자료를 살펴보는 자문위원

회의중인 모습사진

자문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이렇게 꼬치꼬치 집요하게 ‘지적질’을 하는 것은 장애아동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보조기기를 만들어주고 싶은 애정 때문이다. 개발업체 역시 같은 마음으로 시제품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동안 2차례에 걸쳐 약 10명의 아동들에게 기기를 나누어 주고 4주간 사용하게 한 뒤 개선사항을 모니터링한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보조기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예를 들어 균형 훈련 보조기기는 안전성을 위해 골판지 두께를 증가시켰다. 훈련 효과를 위해서 경사각을 보다 가파르게 바꿨고, 아동들이 올라가기 편하게 높이는 조금 낮췄다. 들고 옮기기 쉽도록 손잡이를 높였다가 아동들이 손잡이에 부딪히거나 걸려 넘어지자 위치를 다시 조금 낮췄다.

좌식형 착석보조기기는 결합력을 높이기 위해서 부품을 요철 구조로 끼우도록 했다. 등받이는 처음에 나비 모양으로 만들었다가 걸리적거려서 일자형으로 다시 바꿨다. 또한 등받이를 높이고 벨트 위치를 바꿀 수 있게 했다. 2세부터 5세까지 다양한 연령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편견과 무관심을 넘어… 지속가능한 생산 구조를 꿈꾼다

2018년에 개발된 착석보조기기 사진입니다.

2018년에 개발된 착석보조기기

2018년에 개발된 훈련용 벤치 사진입니다.

2018년에 개발된 훈련용벤치

일단 골판지에 대한 편견부터 걸림돌이다. 의무적으로 안전 인증을 거쳐 기기를 내놓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골판지 보조기기를 신뢰하지 않는다. 소재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해도 ‘골판지로 만든 보조기기는 엄청나게 저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하게 널린 종이 상자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보조기기를 만들어도 아동들이 사용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리고 더 많이 기기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친환경DIY보조기기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개발 및 생산 구조를 만드는 과제도 남아있다.

물론 골판지는 친환경적이면서도 저렴한 소재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활용한 제품이 드라마틱하게 싸지는 않다. 이 친환경DIY보조기기는 특성상 대량 생산이 어렵다. 그래서 현재는 여러 장의 골판지를 붙이고 오려내는 모든 과정이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그게 다 돈이다.

비즈니스로만 생각하면 친환경DIY보조기기는 수익성이 매우 낮다. 그러다 보니 자문회의에서도 “이런 일은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은 국가도 지자체도 하지 않으니 아름다운재단과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센터가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2년째 사업을 해왔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이번에 선보인 기기들은 자문위원들의 의견까지 반영해 최종 결과물로 완성한 뒤 안전 인증을 거쳐 아동들에게 보급될 예정이다. 그게 끝이 아니다. 1년 뒤에는 장기간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선사항을 확인해 또 기기를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도 골판지로 착석보조기기와 훈련용 벤치를 만들었는데, 역시 올해 이를 보급한 뒤 개선점을 수집했고 내년에 보강할 계획이다.

이런 과정들을 꾸준히 밟아 나가면서 친환경DIY보조기기가 조금씩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되면 사회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고, 인식이 바뀌면 좀 더 많은 관심과 지원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재단의 친환경DIY보조기기 사업은 이런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끊임없는 고민과 소통, 실험과 도전이다. 밥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따뜻한 밥은 이미 지어졌다.

글 박효원 | 사진 임다윤

[장애아동 친환경 DIY 보조기기 지원사업]

아름다운재단은 2006년부터 ‘장애아동청소년 맞춤형 보조기구 지원사업’을 10여년간 실시해 장애유형 및 개인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보조기기를 지원해왔습니다. 기존 10여년의 보조기기 지원사업이 장애아동 청소년이 처한 현실적 문제해결에 집중했다면 2018년부터는 그간의 전문성과 경험을 토대로 영유아기 장애아동을 위한 친환경 소재, 성장변화에 맞춘 지속적인 보조기기 교체를 도모하기 위한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2019 장애아동 친환경 DIY 보조기기 지원사업’은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www.atrac.or.kr)과 협력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변화사업국 협력사업1팀 | 유평화 간사

자란다는 건 내일의 세계가 오늘의 세계보다 더 나아진다는 걸 믿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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