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안전권 보장 지원사업]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

<아동 안전권 보장 지원사업>은 아동인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성찰에서 시작된 사업입니다. 오랜 기간 지역 주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힘써온 풀뿌리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아동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데 마음을 모아 2019년 한 해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2019 아동 안전권 보장 지원사업>을 통해 개최된 ‘중랑구 아동권리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로 청소년들이 가진 인권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공유드립니다. 

청소년에게 인권이란?

안녕하세요. 저는 중화중학교 2학년 김은하수입니다. 청소년이 생각하는 인권. 처음 이런 자리에서 인권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는 할 말이 정말 많았는데, 말을 하려고 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우리에게 인권이란?’ 물어봤더니 ‘그딴걸 왜 물어 보냐. 그런 건 그냥 없다 생각하고 살라’고 했습니다. ‘있는데 왜 없다고 생각하고 사냐’고 다시 물었더니 “있으면 뭐해. 누가 그걸 지켜주기나 해? 없다 생각하면 그냥 맘 편해.”라고 합니다.

그냥 이게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소년에게 인권이란 있지만 없는 것! 없다 생각하면 마음 편한 것! 그런데 ‘그냥 이렇대요’ 하면 오늘 이 포럼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우리가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human rights라는 문구가 중앙에 있고, 여러 사람의 손이 인권이라는 단어를 향해 뻗고 있다

human rights, 인권

어른들이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끼는데

저는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데 할머니는 고양이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저희 할머니만 그러시는게 아니라 제가 가끔 길고양이 밥을 고양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놔두면 동네 어르신들이 고양이 밥을 버려버리고 그릇도 치워 버리십니다. 이유는 고양이가 요물이라서 그렇답니다.

고양이가 왜 요물인지 여쭤보면 옛날부터 그랬다고만 하시고 정확한 대답을 해주시는 않습니다. 그리고 밤에 울어대는 소리도 시끄럽고, 음식물 쓰레기봉투도 뜯어놓고 가서 싫다고 하십니다. 누군가 그런말을 했고 그래서 지금껏 요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고양이. 고양이 입장에서는 참 억울하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갑자기 고양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고양이가 어디서부터 시작된지도 모르는 루머같은 이유 때문에 요물이라고 억울하게 불리는 것처럼, 저희 청소년도 억울한 별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중2병입니다. 저는 이 단어가 정말 싫습니다. 병에 걸렸다는게 나쁜 뜻은 아니지만, 아프지도 않는데 환자로 취급하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거기다 중2병의 증상을 들어보면 이렇게 불리는게 더 화가 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중2병의 증상이 어떤건지 아시나요? 제가 인터넷에 찾아보니 원래 일본에서 개그소재로 사용되었던 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칼을 갖고 다니는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뭐든 부정적으로 보는 성향이 크다’, ‘나는 남들보다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가래침 뱉는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런 증상을 중2병이라고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물론 몇몇 청소년들이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경우는 있지만, 중학교 2학년들 중 이런 모습을 보이는 청소년들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불만을 표현해도 “저게다 중2병이야.. 저때 지나면 괜찮아”, 저희가 다르다고 얘기해도 “딱 중2병이네, 저때 지나면 괜찮아” 라고 하시죠. 

고양이가 밤에 우는 것,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뒤지는 것이 그냥이 아니라 이유가 있는 행동인 것처럼 저희의 모든 행동, 말투, 시선등에는 다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들으려 하지 않고, 무조건 중2병이라고 몰아가시는 건 중2를 비하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어른들의 시선으로 저희를 보고,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저희에게 언어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입니다

저는 요즘에 이렇게 존중받지 못한 우리의 권리가 또 다른 차별이나 비하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던 중2병. 이 단어는 어른들만 저희들에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 사이에서도 쉽게 사용됩니다. 이 단어가 우리의 모습을 비하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원에 가기 싫지만 엄마한테 혼나니까 가야 하는 친구들은 자기가 원해서 간 학원이 아니지만 가기 싫다고 마음대로 빠질 수도 없습니다.

청소년에게는 선택권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권리 같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겠어요? 혹시 아이한테 ‘네가 선택해’ 해놓고 선택을 바로 존중해줬는지. 아니면 ‘그런데 그건..’ 하시면서 부가 설명을 하며 설득하려 하시지는 않으셨나요?

아동과 청소년의 인권이 무시되는 경우는 눈에 띄게 들어 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소소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존중받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존중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임대거지’라는 말로 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임대거지’라는 말은 누가 시작했을까요? ‘어린애들이 뭘 알겠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 앞에서 무심코 했던 어른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사람의 가치를 그 사람의 됨됨이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 그것도 인권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라고, 네가 뭘 알겠냐고, 쟤들은 들어도 뭔소린지 모른다고, 존재감을 무시하고 행동은 또 다른 인권을 무너뜨리는 일로 이어집니다. 뉴스에 나오는 학교폭력의 내용을 보면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보다 약한 사람이니까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에 작은 소리에도 귀기울여주고, 자기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환경이 있었다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지금의 모습으로 만났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조금 걱정되는 것이 ‘이걸 정말 네가 썼어?’라고 하실까봐 걱정이 됩니다. 예전에도 아동의 놀 권리에 대한 글을 썼을 때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도 넉넉한 시간과 정보를 준다면 자기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말 할수 있습니다. 저도 이 글을 10번 이상 다듬어서 정리한 것입니다. 어른들의 ‘그럴 리 없어’ 라는 생각도 저희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말입니다.

어른들이 저희의 권리를 인정하고, 인권을 지켜준다면 저희는 지금보다 더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롭고 크게 생각하며, 서로 존중할 줄 아는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 할 수 있습니다. ‘혹시 내 행동이, 내 말이, 말투가 아동, 청소년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시하는 일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저희는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며 똑같이 자랍니다.

글 ㅣ 김은하수

변화사업국 협력사업2팀ㅣ오수미 팀장

작은 씨앗이 심겨 싹을 틔우더니 새들이 깃들어 사는 큰 나무로 자랐다지요. 그러한 변화의 시나리오를 꿈꿉니다. 브이~!!

좋아할만한 다른 이야기

댓글 정책보기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