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어른] 인터뷰 03. ‘수빈’의 자립

열여덟 어른을 아시나요?
만 18세,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보육원을 나와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들을 보호종료아동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열여덟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열여덟 어른 캠페인> 당사자 프로젝트 ‘신선 프로젝트’ 

안녕하세요. 저는 열여덟 어른 ‘신선’입니다. 저는 이번에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캠페이너로 참여하면서 다른 열여덟 어른들을 직접 만나 보았는데요. 열여덟 어른으로 살아왔던 우리들이 자립하면서 겪었던 사회 편견부터 정책의 문제까지, 당사자의 시선으로 당사자의 목소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Q. 신선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요.

유수빈(가명) : 안녕하세요. 저는 23살이고 식품영양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에요. 이후 영양교사나 기업 영양사 쪽으로 취업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의 보호유형은 가정위탁이었는데,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주 어릴 때부터 친할머니가 돌봐주셨어요. 아버지는 건설업에 종사하며 평균 500만 원을 웃도는 임금을 받지만 재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에 신경 쓰느라 저한테 가족은 여전히 할머니뿐이에요.

Q. 신선 : 아버지의 소득이 많은 편인데, 도움을 받은 적이 전혀 없는 건가요?

유수빈 : 제게 아버지는 소위 ‘부양의무자’ 불리는 형식적 부모님이었어요. 여든 가까운 할머니가 밭일을 나가면서 힘들게 생계를 이어나가는 와중에 아버지는 저희에게 정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지원을 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할머니는 동네 주민들의 밭일을 도와가며 받은 일당으로 저를 힘들게 키우셨어요.

게다가, 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채무가 1순위인 저에게 넘어오기도 했어요. 600만 원 정도의 큰돈을 갚으라는 통보를 갑자기 받았을 땐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았어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 싶었죠. 그래도 다행히 제 사정을 이해해 주신 담당자 분이 채무 관계를 처리하는데 도움을 주셔서 잘 해결하기는 했습니다.

Q. 신선 :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부양의무자라는 제도로 정부 지원까지 받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제도가 많이 원망스러웠을 것 같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유수빈 : 부양의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와 등본을 분리하려고 했을 때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어요. “내 딸인데 내가 왜 그래야 하냐 섭섭하다.”라고요. 그럴 때 “아버지는 도움도 안 주면서 왜 화만 내냐”라고 따지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그때만 ‘알았다, 매달 생활비를 챙겨주겠다. 미안하다.’라고만 하셨고 그 후로 도움은 커녕 나 몰라라 하기 바빴어요.

부양의무자는 자립 지원을 받을 때도 걸림돌이 됐어요. LH임대주택지원 사업을 신청했으나 아버지의 소득 때문에 거절되었거든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청에 연락을 해봤을 땐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겨우 만난 담당자도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얘기만 해줬어요. 최근에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문의를 해봤지만 결국 또 거절당했어요. 부양의무자 제도가 많이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거절이 익숙해지다보니… 이제는 처음부터 내 것도 아니었던 걸 원망해서 뭐하냐는 생각을 해요.

Q. 신선 : 지원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자립을 해야 할 때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자립 당시의 심정이 궁금해요. 자립에 대한 준비는 되어있었나요?

유수빈 : 일단 저에게 자립이란 할머니한테서 떨어져 나오는 거였어요. 스무살이 되고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자립을 시작했는데, 할머니와 따로 산다는 게 무서워서 입학 전 한달 동안은 밤마다 혼자 울었던 것 같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돌봐주는 분들이 자주 바뀌어 힘들었는데, 이제 할머니와도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불안함을 느꼈고 서울에 와서도 힘들어서 후회하는 날이 많았어요. 자립 준비는 할 수 없었어요. 대학에 들어와서는 주거환경도 불안정했고, 대학생활하기에도 정신이 없었거든요.

Q. 신선 : 주거환경이 불안정했다고 하셨는데 자립에서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주거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요??

유수빈 : 서울에 와서는 금전적인 문제로 제가 사는 곳이 계속 바뀌었어요. 기숙사, 아버지의 가정, 학교도서관, 쉐어하우스, 3평짜리 월세집, 현재 제가 사는 집까지 하면 총 6곳을 거쳤어요. 처음 대학에 입학하고 기숙사를 사용했는데 유지비가 부족해서 잠깐 아버지의 집에서 지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가정이 사이가 안 좋을 때마다 제게 불똥이 튀고, 먹는 거 씻는 거 등등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친구 집에서 지낸다고 거짓말을 하고 일단 그 집을 나왔어요.

그리고는 갈 곳이 없어서 학교 도서관에서 1달 정도를 몰래 생활했어요. 지하철에 보면 만 원짜리 큰 담요를 살 수 있는데 그 담요와 가방에 옷 몇 벌만 챙겨서 24시간 운영하는 학교 도서관에서 지냈어요. 잠은 소파에서 자고, 아침이 되면 학교 샤워실에서 씻으면서 1달 정도를 생활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보증금이 없는  쉐어하우스를 알게 되어서 그곳에서 몇 달을 지냈어요. 기숙사, 도서관 등을 거치다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집이었던 쉐어하우스에 살았을 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에 들어왔다는 게 행복했어요. 그 집이 엄청 춥고 룸메이트들이 잘 안 치워서 화장실이 막히는데도 저는 너무 행복했어요. ‘내가 치우면 되지 뭐! 집에 들어와서 쭈그려 자지 않고 이불도 덮고 잘 수 있다는 게 어디냐!’라는 심정이었어요. 저는 그때도 운이 되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정말 운이 좋게도, 아동자립지원단이라는 곳을 통해 장학금 제도를 알게 됐고 주거비를 지원받으면서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9만원의 집다운 집에 살 수 있게 되었어요. 내년이 되면 지원이 끊겨서 다시 집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만, 지금은 내년에 대한 걱정보다는 현재 상황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Q. 신선 : 자립을 하면서 기억에 남을만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유수빈 : 아무래도 도서관에서 자취할 때가 가장 힘들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요. 도서관에 자취할 때는 기말고사 시기에다가 마땅한 집은 없고 할머니까지 몸이 편찮으셔서 심적으로 신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그리고 매일 끼니를 값싼 학식으로 해결하다 보니 찌개 같은 집밥이 너무 먹고 싶었어요. 찌개를 사먹을 돈이면 학식을 3번 정도 먹을 수 있는 금액이라 결국 현실에 타협하긴 했는데…

이런 경험 때문에 제 집이 생긴 후로는 안 먹던 아침밥까지도 챙겨 먹게 됐어요. 집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겪은 경험을 통해 생활력도 강해졌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법을 배웠으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Q. 신선 : 살다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나, 가정 얘기를 꺼내게 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데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나요?

유수빈 : 어릴 때부터 그런 경험을 많이 했죠. 학교에서는 부모님이랑 같이 살지 않는 학생을 조사한다면서 꼭 엎드린 채 손을 들으라고 했어요. 그럴 때 눈을 감지 않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이 제가 할머니랑 산다며 많이 놀렸어요. 그래서 학기 초마다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게 너무 싫었어요. 왜 인원도 적은 시골 학교에서 매년 똑같은 검사를 했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요즘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서 말을 하지 않아요. 복잡하기도 하고요. 또. 한편으로는 제 이야기를 하는 게 남에게는 찡찡거릴 수 있다 라는 생각도 해요. 요즘은 우울도 전염이 된다고 말조심하라고 하잖아요. 남에게 안 좋은 감정이 전이 될까해서 말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Q. 신선 : 기억에 남는 소울푸드가 있나요?

유수빈 : 저는 어렸을 때 진짜 시골에 살았어요. 군도 아닌 리에 살았어요. 그래서 동네 피자집이 없는데 가끔 친척들이 올 때 피자와 치킨을 사주면 진짜 좋아했어요. 할머니도 제가 좋아하는 걸 사주고 싶어 하셨지만 여유가 없으니 선뜻 사주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제가 먹고 싶은데 눈치만 보고 있는 걸 아니까, 할머니는 1년에 한두번 읍내에 나갈 때마다 피자를 사주셨어요. 피자를 사서 집에 돌아오면 다 식었는데도 너무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요. 

Q. 신선 :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자립이란?

유수빈 : 저는 사실 자립이란 걸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직접 돈을 벌어 의식주도 해결해야 할 것만 같은데 제게 아직은 많이 어려운 거 같아요.  그나마 제가 지원을 받고 있다는 건 누군가는 제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제가 관심과 사랑을 받는 만큼 그 기대에 부응해서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힘을 내고 있어요.

 

신선한 시선. 열여덟 어른 인터뷰 후 당사자로서 느낀 생각을 공유합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함을 느끼게 되다 

“저는 개인적으로 운이 엄청 좋다고 생각해요. 운이 좋은 게 아니라면 도서관에서 기생하던 제가 어떻게 장학금까지 받아 가면서 저만의 공간을 얻었겠어요.”라며 힘들었던 시절은 웃어넘기고 현재의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 유수빈(가명)을 만났다.

나도 스스로 운이 좋은 편이라고 자부한다. 비록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환경과 비교한다면 미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대학에 들어간 일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올라가지만 내가 지낼 수 있는 집이 존재한다는 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보호종료아동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없지만, 내가 만난 많은 사람은 자신이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나와 수빈이는 웃으면서 얘기했다. “아마도 어린 나이부터 이미 많은 것을 경험했던 우리들이어서, 불행할 일보다 행복할 일들이 더 많은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일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하면서 내가 왜 보호종료아동 자립지원 전문가가 되고자 했는지를 다시 생각하며, 보호종료아동들이 더 이상 과거의 트라우마에 빠져 현재를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수빈이와의 인터뷰처럼 과거의 일은 웃으며 털어버리고, 현재 자신의 삶이 어떤지에 대해서 그리고 얼마나 가치 있고 만족하고 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from.신선

 

글ㅣ사진  신선 (열여덟 어른 캠페인 캠페이너)

 

나눔사업국 1%나눔팀ㅣ서지원 간사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이다(마르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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