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어른] 인터뷰 02. ‘은혜’의 자립

열여덟 어른을 아시나요?
만 18세,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보육원을 나와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들을 보호종료아동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열여덟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열여덟 어른 캠페인> 당사자 프로젝트 ‘신선 프로젝트’ 

안녕하세요. 저는 열여덟 어른 ‘신선’입니다. 저는 이번에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캠페이너로 참여하면서 다른 열여덟 어른들을 직접 만나 보았는데요. 열여덟 어른으로 살아왔던 우리들이 자립하면서 겪었던 사회 편견부터 정책의 문제까지, 당사자의 시선으로 당사자의 목소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좌) 이은혜님 / (우) 자립 4년차 보호종료아동 신선님

Q. 신선 : 안녕하세요. 은혜 씨,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이은혜 : 안녕하세요. 24살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이은혜라고 합니다. 5~6살 때부터 가정위탁 형태로 할아버지 손에 자랐어요. 고등학교 3학년 입시 준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갑작스러운 자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했고, 현재는 뮤지컬과 드라마에서 활동하면서 연기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Q. 신선 : 출연한 작품 중에서 우리가 아는 작품이 있을까요??

이은혜 :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에포닌 역할을 맡았고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는 단역을 맡았어요. 단역이어도 돈을 받고 연기했다는 데에 의의를 뒀어요.

Q. 신선 : 아까 고등학교 졸업 전에 자립을 시작했다고 했는데, 예고 없이 혼자 살아야 했던 그 당시의 심정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이은혜 : 처음 혼자 살았을 때는 어린 마음에 해방감도 느꼈어요. 그러나 해방감은 잠깐이었고 이내 현실을 맞닥뜨렸어요. 갑작스럽게 자립에 내몰렸던 상황이다 보니 주거비와 생활비를 학생 때부터 스스로 벌었어야 했고,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Q. 신선 : 자립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던가요?

이은혜 :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살다 보니까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어요. 당장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해야했기 때문에 돈을 버는 방법과 사용하는 법만을 먼저 터득했어요. 돈을 저축할 여유조차 없었기에 저축은 저와는 먼 얘기로만 생각했어요.

경제적인 부분은 지금까지도 저에게 고민이에요. 지금 다니는 연기 학원에서 캐스팅 디렉터 에이전시도 병행해주는 경우가 많아 크게 도움이 되는데, 그만큼 비용이 비싸니 계속 이어나가기에는 부담이 크거든요. 금전적인 문제는 항상 저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들어요.

하나 더 얘기한다면, 무슨 일이 있을 때 연락을 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 힘들었어요. 나는 아직 어린데, 나를 돌봐줄 어른이 필요한데 그게 없어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모두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했어요. 그렇다 보니 어릴 때부터 막중한 책임감에 부담을 느꼈어요.

Q. 신선 : 자립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이은혜 : 작년 4월에 자취방에 큰불이 나서 약 1,000만원을 보상했어야 할 때가 있었어요. 그 외에도 이사, 청소 비용 등으로 추가로 돈이 많이 필요했어요. 게다가 키우던 고양이마저 잃게 되어 금전적, 심리적으로나 큰 타격을 입게 되었어요. 그런 일은 생전 처음이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몰라서 장학 사업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아동자립지원단 선생님이 가장 먼저 생각나서 연락을 드렸어요.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선생님들까지 오셔서 화재 문제를 처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셨어요.

운이 좋게도 당시에 장학금 지원해준 단체에서 제 사정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보상해야 할 금액을 기부해주셔서 간신히 화재 비용은 해결하게 됐어요. 나머지 이사비용과 같은 문제는 대구시 가정위탁센터에 사정을 이야기해서 퇴소 예정일보다 미리 자립정착금 300만 원을 수령하여 해결했어요. 당시에 제가 받는 유일한 지원금인 자립정착금을 다 써서 이후에 다시 정착하는 데까지 시간을 버린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그래도 지금은 잘 해결됐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Q. 신선 : 살다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거나, 가정 얘기를 꺼내게 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마주하는데요. 기억에 남은 경험이 있으세요? 

이은혜 : 중고등학교 때까지 제 상황이 불우하다고 얘기하는 걸 꺼렸어요. 가난하고 엄마 아빠 없이 할아버지 손에 자랐다는 거, 사실 사회적으로 인식이 좋지 않잖아요. 저는 제 나름대로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인식은 그렇지 않아서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아무한테도 제 부모님의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친구들을 집에 데려간다는 사실은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들한테까지도 제 속사정을 오픈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17살 때 처음 만나서 20살이 되어서야 술자리에서 술의 힘을 빌려서야 말할 수 있었거든요. 근데 처음이 힘들지 그 이후로는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시에 연기 수업을 받았던 경험이 큰 영향을 준 거 같아요. 연기를 배우면서 자존감도 높아졌고 제 얘기를 꺼내며 말하는 게 점점 더 어렵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 이야기를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제가 생각했던 만큼의 반응이 아니어서 벽이 허물어진 느낌을 받았어요. 고등학교 친구에게 제 얘기를 하면서 서로 자신의 비밀도 공유하고 공감해주니까 관계가 더 끈끈해졌어요. 

요즘도 계속 생각하는 건, 드라마와 영화, 어린이뮤지컬 등 학교 폭력이나 왕따를 다루는 작품을 보면 왜 죄다 왕따를 당하는 피해자들은 지저분하고, 더럽고, 부모가 없는 이미지인 건지… 그런 게 너무 싫어요. 결국 이런 이미지들이 조금씩 쌓여 사회적 인식을 만드는 거잖아요. 왕따 가해자는 부모님이 있고 집이 부유한데 왕따 피해자는 부모가 없어서 조부모 손에 자라고 더럽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게 싫어요. 이런 이미지들이 많아질수록 되려 우리 같은 친구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저 남들이 생각하는 가정환경과 조금 다를 뿐이지, 그게 죄가 되거나 부끄러운 게 아닌데 말이에요. 그냥 여러 가정 형태 중의 하나일 뿐인데도 안 좋은 인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화나요.

사람마다 자신이 힘들고 외롭고 그럴 때 성격이 변한다거나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건 부모가 없는 사람들한테만 있는 일이 아니라 부모가 있는 사람들도 상황과 성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거든요. 제 할아버지는 정말 좋은 분이셨고 저 스스로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고 생각해요. 가정환경이 어렵다고 해서 가정 교육을 못 받고 예절에 문제가 있는 것만은 아닌데 미디어에서 안 좋은 단면만 표현되는 것 같아서 속상해요.

아무것도 아닌 조그마한 내 배경 때문에 내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단정지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요. 이런 인식 때문에 우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꺼리게 돼요. 그래서 요즘은 그런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영향력 있는 배우가 되어 보호종료아동에 관한 단편적이고 부정적인 인식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변할 수 있게 있도록 말이죠.

Q. 신선 : 은혜 씨에게 자립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은혜 : 자립은 함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홀로서기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어나는 자립이라고 생각해요. 그 누구도 혼자서 일어나는 사람은 없거든요. 아기도 그렇잖아요. 아기가 걸음마할 때도 엄마아빠가 도와줘서 일어서는 거지 절대로 혼자서 설 수 없잖아요. 그래서 자립은 함께 하는 거라 생각해요.

신선한 시선. 열여덟 어른 인터뷰 후 당사자로서 느낀 생각을 공유합니다.

장학재단에서 처음 알게 된 이후로 항상 해맑은 얼굴로 장난을 걸어와서 걱정 없이 사는 밝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속 이야기를 들여다보니 보기와는 다르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단단하고 어른스러운 자립 선배였다.

은혜와 얘기하면서 도중에 나도 모르게 ‘운이 좋게도…’라는 말을 했었는데 한편으로는 ‘운’이라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지역이나 보호 유형에 따라서 자립에 대한 준비도 상이하고 자립을 위한 지원금도 달라진다. 때문에 운이 좋은 친구는 이런 저런 많은 지원금에 탄탄한 자립정보를 얻고 자립을 시작하는 반면에 운이 나쁜 친구는 몇개월도 못 버틸 정도의 금액만 가지고 갑자기 세상으로 내보내지기도 한다.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제도 안에서도 차별을 겪는 경우가 많아서 세상 밖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친 후, 은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해맑게 인사하며 돌아갔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인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꺼내는 게 쉽지도 않을 텐데 용기를 내어 말해줘서 고마웠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느낀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공유하는 과정 속에서 나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에 보답하듯 더 좋은 인터뷰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는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내 마음처럼 복잡하게 느껴졌다.

 from.신선

글ㅣ사진  신선 (열여덟 어른 캠페인 캠페이너)

 

나눔사업국 1%나눔팀ㅣ서지원 간사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이다(마르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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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응답

  1. 익명 댓글:

    공감이가는 글..
    신선님글이…특히나 물건이 없어졌을때..그부분..
    저도 똑같이 겪었지요…왕따를 당하고..보육원산다고 밝힌이후로 친한친구들이 다 떠나가 버렸지요…그뒤로 극심한 우울증이..아직까지30대가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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