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빈틈에 돌아온 음악편지

안녕하세요. 변화사업팀 허그림 간사입니다. 저는 작년 겨울 <철 지난, 그러나 지금도 좋은 음악편지>를 띄웠습니다. 이런 마이너한 음악리스트를 도대체 누가 들을까 걱정했지만, 놀랍게도 편지를 통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가 생겼습니다. 지난 봄, 이 친구와 함께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3주 간 매일 누군가에게 음악과 함께 ‘나의 일상’을 담은 편지를 띄우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이번에는 또 다른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비슷한 취향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에요. 프로젝트를 통해 쓴 편지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는 활동가의 소소한 일상이기도 하고, 무심한 음악리스트이기도 합니다. 수줍음쟁이의 서투른 말 걸기 방식이기도 하구요. 새해에는 이 편지를 받은 모든 분들이 ‘나를 나답게 하는 관계’에 속하길 바랄게요! 

#출근길음악 첫번째 편지 (2018년 4월 30일)

활동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연결하고, 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활동가라는 직업(또는 역할)은 말그대로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용하고 내향적인 활동가들도 있습니다. ‘내향적인 활동가’라는 정체성은 얼핏 엇박자를 이루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은 나는 이 일에 적합하지 않은 걸까, 이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 성향을 바꾸어야 할까 고민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쩌면 먹고사니즘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만물은 어떤 관계에 접속하고, 어떤 자리에 배치되는지에 따라 자신에게 잠재된 무한한 역량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내향적인 활동가를 위한 커뮤니티 <활동가는 의외로 수줍음이 많다>는 그런 공간이 되고 싶습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관계, 따뜻하게 지지해주는 관계를 쌓고, 이를 토대로 우리의 방식대로 작지만 의미있는 일을 만들면 어떨까요? 우리는 먼저 동료를 찾아나서기로 했습니다. 날마다 수취인 불명의 유리병 편지를 바다에 띄우는 노인처럼, 날마다 음악편지를 전하기로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먼저 말 걸기에 서투른 수줍음쟁이의 방식이랄까…

영화 <500일의 썸머>보셨나요? 엘레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조토끼와 썸머가 처음 대화를 나누는데, 두 사람을 매개한 스미스의 노래입니다.

The Smiths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 (1986)

 

#출근길음악 두번째 편지 (2018년 5월 1일 노동절)

오늘은 노동절입니다. 노동절에도 출근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출근길음악을 전합니다. 제가 일하는 조직은 2013년부터 노동절을 휴무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활동가냐 노동자냐’ 논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직내 세대가 바뀌면서 이런 논쟁은 자연스럽게 일단락된 것처럼 보입니다. 한편 조직 내부에서 여전히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조직 특성상 누가 사용자고 누가 노동자냐, 라는 대화가 오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활동가도 노동자다’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 정체성은 활동가에게 선의와 열정만을 요구하며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당하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경감시키고, 활동가의 노동권과 워라벨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절 특집은 1970-80년대 활동했던 영국의 펑크밴드 클래시의 명작입니다. 프론트맨 조 스트러머가 미국 스리마일 핵사고를 보고 쓴 곡으로 당시 영국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노동절과 별 상관없는 곡이군요; 어쨌든 내향적인 노동자들의 사랑과 연대를 꿈꾸며…

The Clash – London Calling (1979)

 

#출근길음악 세번째 편지 (2018년 5월 2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출근길입니다. 음악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재충전한다는 친구의 글을 보고, 나는 무엇을 통해 힘을 얻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도 혼자만의 시간에 가만히 음악을 들으며 위안을 얻습니다. 고민거리에 속을 썩이다가도 음악을 들으면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채 “그래, 이거면 됐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일과를 요가로 마무리하는데, 무척이나 힘을 얻고 있습니다. 요가는 아사나와 프라나야마를 반복하며 몸과 마음의 반응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히 내 몸과 마음에 집중하게 되고 잡념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살뜰히 보살피는 수련시간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요가원장님이 수련을 마무리할 때마다 하는 말씀도 마음에 들구요. “숨을 마실 때 지혜와 용기, 사랑과 기쁨, 건강과 행복을 마음 속 가득 채우세요. 나마스떼.”

여러분은 무엇을 통해 힘을 얻나요? 미국 인디씬의 조상님으로, 1986년 데뷔앨범을 발표한 이래 변함없이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요 라 텡고의 노래가 출근길에 조금이나마 활력을 주면 좋겠습니다.

Yo La Tengo – You Can Have It All (2000)

 

#출근길음악 네번째 편지 (2018년 5월 3일)

어제 한 동료가 퇴사했습니다. 두어달 전부터 퇴사 소식을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이별을 해야 하니 너무 아쉬웠어요. 수줍은 성격 탓에 무심하게 보였을 테지만, 그 친구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저 우리에게 좀 더 시간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점을 후회했습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시절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을 실컷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운동이 공공성을 담은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발신하는 것이라면 소울 음악의 대부 마빈 게이는 누구보다 뛰어난 운동가였습니다. 이 노래를 발표된 1970년대보다 지구의 사정은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생태적 전환이 필요할 때. 시간은 충분치 않습니다.

Marvin gaye – Mercy Mercy Me (1971)

 

#출근길음악 다섯번째 편지 (2018년 5월 4일)

3일간의 연휴를 앞둔 출근길입니다. 오늘은 제이슨 피어스가 이끄는 영국의 록밴드 Spiritualized의 노래를 골랐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g in Love를 매쉬업한 버전입니다. 듣고 있노라면 말그대로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몽롱한 러브송이랄까. 이 곡이 수록된 동명의 앨범은 팬덤에서 일명 약상자로 불립니다. “Spiritualized는 마음과 영혼을 치료합니다 / 하루에 한두번 또는 주치의의 처방에 따라 감상하세요 / 건조한 곳에 두고, 직사광선을 피하고, 아이들이 만지지 못하게 하세요.” 의약품을 컨셉으로 만들어진 앨범에는 환각적인 분위기의 트랙들이 담겨있습니다. Spiritualized 들으며 꿈결 같은 연휴 보내시길.

Spritualized –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 (1997)

 

#출근길음악 여섯번째 편지 (2018년 5월 8일)

지난 금요일에는 부산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사진 속 풍경이 너무 예쁘죠? 수도도 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달동네의 가파른 비탈을 오르고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전망입니다. 한국전쟁 피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부산 영도구 해돋이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기초생활수급자이고 무허가 노후주택이 밀집된 취약지역입니다. 이를테면 남은 여생을 고향집에서 보내기 위해 돌아온 노인은 천장이 조금씩 무너져내리는 흙집에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활동가는 비탈진 사면에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집들 사이로 구불구불 난 골목길을 누비며 마을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여러 소속단체에서 일하는 그는 쪽방주민들을 조직화하는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활동가는 ‘쪽방 형님’들과의 애환이 담긴 에피소드를 담담하고 유쾌하게 전했습니다. 만성적인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겪고 있는 주민들에게 필요한 건 자활·자립 프로그램이 아니라 서로 돌볼 수 있는 관계라고 합니다. 무연고 주민이 돌아가시면 ‘공동체 장례식’을 치르는데, 고인과 안면이 없는 주민들도 모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고 합니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공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주민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형님들이 아주 가끔, 요만한 뭔가를 보여줄 때가 있다. 그게 정말 중독성 있다. 그걸로 지금까지 버틴거지…”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활동가의 모습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선곡은 덴마크 싱어송라이터 아그네스 오벨의 피아노 연주곡입니다. 그녀의 손 끝에서 흐드러지듯 아름답게 피어나는 선율을 감상하며 편안한 출근길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Agnes Obel – September Song (2014)

 

#출근길음악 일곱번째 편지 (2018년 5월 9일)

저도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릴 적엔 잠깐 머물러도 모래범벅이 되는 바다를 그저 귀찮은 곳이라고 생각했죠. 고향을 떠난 후로 역동적인 생명력을 품고 있는 바다를 동경하게 되었습니다(청개구리 근성). 실은 바다를 떠올릴 때 느낌은 경외심에 가깝습니다. 거의 매년 휴가를 바다에서 보낸 것 같습니다. 놀랍도록 풍요로운 바닷속을 탐험하고, 튜브를 끼고 넘실대는 파도를 타고, 그냥 해변에서 뒹굴거리기도 합니다.

마지막 바다는 작년 여름에 갔던 일본 하야마 해변입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수평선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급히 바다로 뛰어들어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물 속에 있었습니다.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에 몸을 누이고 칠흑같은 어둠이 드리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한없는 고요 속에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요. 그날의 바다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오늘 출근길음악은 지각입니다. 어젯밤 새벽 2시의 감성으로 쓴 글을 몇 번이나 지우고, 선곡도 마음에 들지 않아 두어번 바꾸었어요. 결국 프랑스의 일렉트로닉 듀오 Air의 음악을 골랐습니다. 따뜻한 아날로그 느낌의 전자음악을 들려주는 팀입니다. 제목은 ‘오늘 아침에’라는 뜻입니다.

Air – Ce matin-là (1998)

 

#출근길음악 여덟번째 편지 (2018년 5월 10일)

티비 다큐에서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드림 콜라주’를 만드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잡지를 뒤적여 새해 소망에 해당하는 문장들을 오리고 붙인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기’, ‘끼니 거르지 않기’ 등등. 크고 대단한 건 아니지만 콜라주를 만들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문득 구글독스에 처박아둔 새해 목표가 생각났습니다. 여러분은 새해 목표를 세우나요?(정말 궁금) 저는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걸, 하며 언젠가부터 뚜렷한 목표 없이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새해 목표를 세웠습니다. 새로운 건 아니고 매번 다짐하고 좀처럼 이루지 못한 목표였죠.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만든다.” 사실 이런 추상적인 목표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목표는 구체적일수록 달성하기 쉽고, 성취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달성 정도를 파악하기도 용이하구요. 크고 애매한 목표를 잘게 쪼개어 작고 구체적인 목표들을 정했습니다. 예를 들면 일상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성찰의 내용은 글로 적는다(월 1회), 5개월 간 요가를 수련한다 등등. 드림 콜라주를 만드는 사람처럼 목표를 세우는 것만으로 내 욕망이 무엇인지, 충족/결핍 상태인지, 결핍을 메우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지 마주하고 조금 행복해졌습니다.

오랜만에 새해 목표를 꺼내어 보니 작심삼일로 끝난 것들이 많습니다. 지금의 사정에 따라 목표들을 가감하여 ver. 2를 만들었습니다(이거슨 유연한 마음). 과연 몇 개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연말정산이 기다려집니다. 그런데 실은 제가 목표지향적 인간이 아니라 여러 버전의 목록을 만드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 함정이에요;  오늘 아침에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뮤지션이자 프로듀서로서, 다양한 장르를 다룸으로서 전방위적 성취를 보여준 토드 런그렌의 낭만적인 노래를 전합니다.

Todd Rundgren – A Dream Goes On Forever (1974)

 

#출근길음악 아홉번째 편지 (2018년 5월 11일)

짐 자무쉬의 <패터슨>은 곱씹을수록 좋은 영화입니다. 얼핏 보기에 패터슨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습니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가거든요. 그러나 들여다보면 우연한 만남, 짧은 대화, 감정의 변화 등 자잘한 변주가 그의 삶에 흐르고 있습니다. 패터슨은 버스 드라이버이자 시인입니다. 그는 자신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길어올린 영감으로 누구보다 아름다운 시를 씁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응시할 때 삶은 예술이 됩니다. 이 마법과도 같은 순간! 짐 자무쉬의 시선으로, 패터슨의 시선으로 오늘 하루를 바라보면 어떨까요?

Tammy Wynette – Walk Through This World With Me (1967)

 

#출근길음악 열번째 편지 (2018년 5월 14일)

지난 주말 청소년 활동가들을 만났습니다. 각각의 모둠은 자신이 사는 학교나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지만 의미있는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모둠은 중학교 1학년 단짝 친구들로 구성된 모둠입니다. 아직 초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아이들은 부모님과의 대화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 친구들과의 사소한 다툼이나 갈등이 학교폭력으로 번지는 것, 이웃들과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자신의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다고 합니다. 활동경험이 전무한 아이들은 복지관에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복지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가족, 학교, 마을공동체의 관계 개선을 위한 활동계획을 세웠습니다.

열네 살 아이들이 스스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부족한 자원을 연계하여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편 임대아파트 차별, 경비원 해고, 층간소음 등 아파트공동체의 사회문제가 심각한데요. 어른들이 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선 아이들의 모습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이 대견한 활동가들이 우당탕탕 좌충우돌하며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무척 기대됩니다. 누가 이들을 막을 수 있을까요?

오늘 출근길음악은 영국출신 그룹 생 에티엔의 상큼 발랄한 댄스팝입니다. 즐겁게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시길!

Saint Etienne – Nothing Can Stop Us (1991)

 

#출근길음악 열한번째 편지 (2018년 5월 15일)

저는 오늘 사무실이 아니라 기본소득을 주제로 열리는 컨퍼런스로 출근합니다. 최근 2, 3년간 진행된 해외의 기본소득 실험을 접할 수 있는 자리이므로 귀한 배움의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모든 시민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을 지지합니다. 지지자들은 기본소득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한다, 임금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높인다,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확장한다고 말합니다. 정작 제가 기본소득에 ‘꽂힌’ 이유는 따로 있어요. 자세한 설명은 몇년 전에 쓴 필립 반 빠레이스 외 <분배의 재구성> 서평에서 발췌한 글로 대신합니다.

“내가 기본소득에 가장 흥미를 느끼는 지점은 지급대상에게 노동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과도한 노동과 생산, 그리고 노동 숭배에 직접적으로 문제 제기한다. 자본주의는 노동을 통제하는 시스템의 형성을 통해 지속되는데 이같은 문제의식은 체제의 근간에 대한 것이다. 기본소득은 게으름뱅이들이 생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현금을 지급하므로 급진적인 상상력은 제한될 수 있다. 그럼에도 기억해두자. 기본소득은 자유와 평등의 권리이자 노동하지 않을 권리이다.”     

벨기에의 레게 그룹 Pura Vida가 노래하는 기본소득 찬가를 들어보세요!  

Pura Vida – Basic Income (2016)

 

#출근길음악 열두번째 편지 (2018년 5월 16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입니다. 저는 반차를 내고 늦잠을 잤어요. 비몽사몽한 정신이라 좋아하는 시 한 편, 노래 한 곡으로 때웁니다. 출근길음악이 아니라 중식음악 정도 되겠네요;  

박정대 – 음악들 (2001)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 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 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뮤지션 앨리스 포비 루입니다. 1993년생 남아공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로 현재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른하지만 강인함을 지닌 그녀의 목소리가 드림팝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Alice Phoebe Lou – Girl on an Island (2016)

 

#출근길음악 열세번째 편지 (2018년 5월 17일)

요즘 수전 팔루디의 책 <백래시>를 읽고 있습니다. 저자는 르포르타주 형식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이 전방위로 진행된 1980년대 미국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 냅니다. 대중문화는 여성들에게 직장을 포기하고 가정으로 돌아가 순종적인 아내로서 헌신적인 엄마로서 행복을 누리라고 강요합니다. 뉴라이트 진영은 1970년대 여성운동의 최대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낙태 합법화와 남녀평등헌법수정안을 중단시키려고 총력을 다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겹쳐 보였어요. 예나 지금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동일한 임금과 동일한 고용기회, 남녀평등헌법수정안, 낙태할 권리, 출산휴가보장, 적당한 수준의 보육서비스 등을 요구하는 여성들은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여성혐오 현상에 대한 분석은 소름끼칠 정도예요. “우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저소득층 남성들은 아버지들만큼 많이 벌지 못하고 여성운동으로서 가장 많은 위협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여성의 역할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20퍼센트의 인구를 대변한다. 이들은 취직이 어려웠고 취업한 뒤에도 해고 1순위였으며, 저축도 없고 미래의 가능성이라고 할 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p. 135) 적의 얼굴을 알 수 없을 때 사회는 그것을 만들어 낸다. 하락하는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과도한 집값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불안 같은 것들은 공격 대상을 필요로 하는데, 1980년대에는 그것이 대체로 여성들이었다(p. 138).  

<백래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책입니다. 또한 우리 안에 내재된 편견이 고도화된 반격임을 깨닫게 해주고요. 책은 매우 재미있어요. 이런 밀착취재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저자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저자의 말투가 다소 냉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데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 자체가 비논리, 거짓 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 책의 OST를 만든다면 미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미야 폴릭의 노래를 고를 것 같아요. 왠지 보컬과 멜로디에서 페미니즘-백래시-페미니즘 리부트로 전진하는 듯한 강인한 힘이 느껴진달까(노랫말은 은유적이라 이해를 못함).

Miya Folick – Deadbody (2018)

 

#출근길음악 열네번째 편지 (2018년 5월 18일)

목요일 자정을 넘긴 시각에 이 글을 쓰고 있는데요. 오늘처럼 비가 억수같이 내린 날에는 ‘마치 수조 속의 물고기’가 된 기분으로 이 노래를 듣습니다 (특히 장마철에 딱!).

동경지방에 많은 비가 내려서 / 하루종일 방안에만 있던 적도 있지 / 마치 물고기가 된 기분이야 / 마치 수조 속의 물고기 / 마치 헤엄치지 못하는 물고기

Fishmans – Weather Report (1997)


그동안 아껴 두었던 저의 최애를 소개합니다. 피쉬만즈는 1990년대 일본 인디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석같은 그룹이에요. 나른하고 섬세한, 때로는 고양이 울음 같은 사토 신지의 목소리, 그저 날씨와 계절을 느끼고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걷는 것 그거면 됐지 식의 담백하고 소박한 노랫말, 꿈꾸는 듯한 몽환적인 멜로디, 노랫말과 대비되는 장대한 분위기의 편곡… 스무 살부터 줄곧 함께 하고 있고, 지금까지 의지하고 있는 음악입니다.

부끄부끄뮤직봇 시즌1은 이것으로 마무리합니다. 내향적인 사람이 매일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건,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매일 쪽글을 쓰는 건, 조금 힘들었지만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날씨에 노래를 쳐야 비로소 계절이 되는 것 같다’는 말처럼 설레고 따뜻한 봄기운 가득한 5월을 보냈습니다. 우리의 서투른 말 걸기 방식이 다른 분들에게 어떻게 보여졌을까 궁금합니다(부끄). 시즌2로, 어쩌면 다른 꿍꿍이로 곧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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