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진로탐색 지원사업] 나는 한 권의 책이다③

[길찾기] 나는 한 권의 책이다

나는 한 권의 책이다

– ‘나’를 들여다보는 마지막 과정, 사람책 도서관

 

누구나 책이 될 수 있다

‘사람책’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조금 생소하시다면 같이 추측해보시겠어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책 즉 사람이 책이 된다는 뜻이에요. 한 권의 책에 한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가 담기는 것이죠. 꼭 거창하거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도 누구나 사람책이 될 수 있어요. 누가 쓰든지 단 한권도 똑같은 책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에요.

[나눔지식일반] 사람책을 빌려드립니다-휴먼라이브러리 창립자 로니 에버겔 초청 강연 후기

나이가 어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어리면 쓸 내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지금의 자기를 있게 한 결정적인 사건들을 정리해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답을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라면 더더욱 제격이죠. 길찾기 프로젝트에서는 11명의 아이들이 사람책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로 ‘사람책 도서관’입니다. 저도 그 현장에 함께 했는데요. 조금 지났지만 그 때 그 풍경과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함께 하시겠어요?

2014년 7월 8일, 가톨릭 청년회관 니콜라오홀에는 공간민들레 길잡이 선생님들이 하나 둘 씩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대 앞에는 ‘사람책 도서관’ 이라는 제목이 적힌 커다란 현수막도 붙었고, 텅 비어있던 홀이 열 한 개의 책상 모둠으로 채워졌습니다. 물론, 사람책의 목차가 적힌 팻말도 각 책상에 놓였지요. 1시가 되자, 다른 학교의 아이들과 선생님들로 공간이 꽉 찼습니다.

이번 사람책 도서관에는 공간민들레, 과천 중등 무지개학교, 광명 볍씨학교, 그리고 마포구의 경성고등학교에서 지원한 11명의 사람책을 마련하였습니다. 참가자들은 각 사람책 목차를 미리 읽어 보고 대출 신청을 한 상태였죠. 첫 시간과 두 번째 시간으로 나누어서 진행되는데, 사람책을 읽으러 온 친구들은 두 권의 책을 읽게 되고, 11명의 사람책들은 5~6명의 독자들에게 두 차례동안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11명의 사람책 서문 [자세히 보기]

각 모둠마다 진행을 어려워하는 사람책들을 도와주기 위해 길잡이 선생님들이 함께 했는데요. 저도 공간민들레의 한 친구과 경성고등학교의 한 친구의 사람책을 함께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람책을 읽는다

제가 함께 한 첫 번째 친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는 친구였어요.

사람책 목차도 다른 친구들은 한 장인데 비해 두 장을 꽉 채웠고, 배정된 50분이 부족해서 끝날 때가 다 되어서는 서둘러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죠.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곳을 나와 대안학교 몇 곳을 가게 되고 지금 있는 학교에 정착하기까지 세세하게 본인이 살아온 흔적과 경험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시시콜콜해 보이는 이야기들도 모두 털어놓았고 듣는 이들도 모두 경청해주었습니다. 볍씨학교의 친구들은 일제히 공책을 꺼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받아 적기도 했어요.

그 친구의 사람책에는 그 자리에서 처음 본 사람들에게 털어놓기에는 힘든 아픈 상처가 있었지만 덤덤하게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책의 표정은 ‘뭐 별거 아니야’ 라는 듯했지만, 듣는 이들은 순간 모두 진지한 자세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50분의 이야기가 끝나고 서로 소감이나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한 친구도 용기를 내었습니다. 자기도 그런 아픔이 있었다고, 당신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자기 소개를 할 때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겨우 이름을 말해주던 조용한 친구였는데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것을 용감하게 말한 것입니다.

두 번째 친구의 사람책은 앞 시간과는 사뭇 다르게 약간은 시끌벅적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중학교 시절 일탈과 그로부터 깨달은 것을 들려주었는데, 그 친구를 제외한 다른 모든 친구들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생활과 생각에 대해서 흥미로워 했었지요. 중학교 때 잠시 ‘일진’이라고 불리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일탈을 저지른 이야기, 경찰에 신고 당했던 사건,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들끼리만 떠난 오이도 여행에서 다짐했던 것들… 이런 이야기를 듣는 동안 대안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은 이 생소한 공교육의 또래 혹은 형, 오빠의 이야기를 재밌어 하기도 하고, 이해를 잘 못하기도 했습니다. 공교육 학교에 한 번도 다녀보지 않은 대안학교의 14-15살 되는 친구들은 시험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풀러 일탈을 하는 것이나, ‘일진’이라는 것을 만들어 떼 지어 어울려 다니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경찰에 신고를 당해 경찰서에도 다녀오고 아버지께 크게 혼이 난 이야기를 들을 때는 마치 만화 주인공이 겪는 모험담처럼 흥미진진하다는 눈빛으로 집중했지요.

그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를 간결하게 마치고는, 이전까지는 이름만 들어봤던 대안학교의 생활에 대해 궁금하다며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너희 학교들도 시험을 보지?”라고 물었을 때 너무도 당연히 보지 않는다”는 볍씨학교 친구의 말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하고, “술이나 담배 같은 것은 접하기 힘들지?” 라고 물었을 때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며 “그런 것은 안하는데…”라고 대답하는 대안학교 동생들을 보며 역시 그렇구나하는 표정으로 “절대 좋은게 아니”라며 안심시켰습니다.

그 친구는 단순히 생활이 어떻게 다른 가에서 그치지 않고 각자의 꿈에 대해서 돌아가며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13-14살 정도의 어린 친구들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대답했고, 아동의 권리를 위해 힘쓰는 국제 민간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는 당찬 꿈을 가진 친구를 비롯해서 각자의 다양한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본인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4년제 대학 호텔관광학과에 진학한 뒤 호텔에서 매니저 일을 하고 싶다고 하는 꽤 구체적인 계획을 이야기하더군요. 그러고는 이내 만족스러웠던지 그 날의 시간을 마무리했습니다.

나를 정리하고, 너를 이해하고, 다시 너를 돌아본다

사람책 도서관의 가장 큰 의미는 서로 다른 삶을 만난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적으로 만나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친구의 장래희망조차 모르는 것이 우리의 모습, 요즘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내 꿈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고, 아니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삶을 꿈꾸는 지는 물어볼 수가 없는 것이겠죠.

먼 미래에나 있을 것 같은 꿈에 대해서 뿐만이 아닙니다. 내가 지난 시간동안 쌓아온 추억들, 거기서 느꼈던 것들, 깨달았던 소중한 가르침 그리고 인생에서 나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과거의 내 모습에 대해 단지 몇 조각의 단편적인 기억들만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현재의 내 모습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일상을 돌아보기’의 힘은 바로 사람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발휘됩니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수많은 일상의 이야기들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있게 했습니다. 길찾기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사람책을 쓰기 위해 ‘인생의 타임라인’도 그려보고 사람책의 목차 정도는 완성해보는데요. 그 목차를 정하기 위해서 어렸을 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떠올리고 그것이 지금에 와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내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떠올려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난 후에야 순서대로 자기 삶의 목차를 구성하게 되고 나름대로 현재 삶에 대한 결론 혹은 앞으로의 다짐을 내게 되지요.

아이들은 자기 삶을 정리해보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각자 정리한 사람책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가 쓴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나도 그 때 소심해서 먼저 친구들에게 말도 못 걸었었는데…….’ 라며 공감하기도 하고, ‘저 형은 친구들하고 저런 걸 하면서 학교에 다녔구나.’라고 다른 점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본인도 자기만의 사람책을 만들어서 스스로 지나온 삶에 대해 정리해보았기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것은 받아들일 자리가 없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름대로 인식하고 있을 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해보기도 하고 타인의 삶에 비추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기도 하며, 이전까지 알고 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이 깨지기도 합니다.

타인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과정일 것입니다. 혼자서 가만히 자기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둥지에서 떠나 나서는 길 위에서 타인들의 삶을 만날 수 있었던 사람책 도서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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