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게 우토로] 역사의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우토로 – 흥사단 문성근 정책기획국장 인터뷰

우토로 마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교토 군용비행장을 짓기 위해 강제 동원된 조선인과 그 후손이 모여 살았던 마을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법원과 개발업자가 ‘땅을 무단 점거하고 있다’며 유엔의 강제퇴거 금지 권고안도 무시한 채로 우토로 주민을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퇴거 위기에 놓인 우토로 주민들의 소식이 알려지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많은 시민이 모금에 참여했고, 그 결과 토지 일부를 매입하여 우토로 주민들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4월, 우토로 주민들의 시영주택 1기 입주를 축하하는 마을 잔치가 열렸고 재일동포, 일본인, 한국인 활동가들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우토로와 함께했던 활동가들에게 우토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어떤 의미일까요?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우토로에 꾸준히 관심을 두고 응원해 온 흥사단 문성근 정책기획국장의 인터뷰를 전해드립니다.

흥사단 문성근 정책기획국장

흥사단 문성근 정책기획국장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흥사단에서 정책기획국 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문성근입니다. 흥사단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1913년에 조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힘쓸 인재를 양성하고자 설립한 단체로 올해로 105주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시민사회 의제, 민주시민교육, 국제교류협력사업 등의 활동을 하고 있어요. 특히 일제강점기에 받은 피해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아직 완전한 독립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근현대사 관련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Q. ‘완전한 독립’이란 말이 인상 깊습니다. 국장님께서 우토로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5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여했는데 프로그램 일환으로 우토로를 방문했어요. 저는 그전까지 우토로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차별과 탄압의 역사 현장인 우토로를 방문하고 나서 반성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토로 주민은 강제철거 위기에 놓인 상황이었어요. 점점 거세지는 압박과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우토로 주민들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그때, 어르신들과 함께 우리 전통 가락에 맞추어 손잡고 춤추던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성(姓)으로 되어 있는 문패도 기억나고요. 누군가는 감추고 싶고,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이지만 반드시 현재의 역사로 되살려내고 의미를 찾아야 할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10년 전 <우토로희망모금>에 많은 시민이 참여해주셨는데, 그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시민들이 아픔과 상처가 남아있는 역사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해요. 그저 우리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현재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또는 잃어버린 역사의 조각이었던 것으로, 치유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던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해결하고자 나서는 시민들이 늘어난 것 같아요. 결국 시민들의 참여가 정부와 일본 시민사회를 움직였고, 우토로 주민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봅니다. 이 희망이 토지 매입과 공동주택 건설로 이어졌고, 평화기념관 건립을 준비할 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우토로 1기 시영주택 입주 기념 행사 - 마을 잔치 풍경

우토로 1기 시영주택 입주 기념 행사 – 마을 잔치 풍경

Q. 우토로 주민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시영주택에 입주하게 되었는데요. 이를 축하하는 마을 잔치에 함께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먼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우토로 방문이었는데, 가장 많은 분들이 모여 축하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 힘겨웠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날 만큼은 환한 웃음으로 마을 전체가 기운이 넘쳤어요.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가 낭독될 때 주민 여러분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면서 함께 뭉클했습니다. 다음세대가 역사의 책임을 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고생하시다가 세상을 떠난 분들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오랜 세월 차별과 탄압에 굴하지 않고 견디셨던 1세대 분들이 입주행사에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Q. 이제 우토로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새로운 시영주택에서 살아가게 될 텐데, 무엇보다도 주민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었으면 좋겠어요. 한 어르신이 ‘과거에는 삶의 조건은 어려웠지만 모두가 친하게 지내며 아무 집이나 들어가 차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이제는 단절된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파트 구조가 이웃 간 단절된 생활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보는데요. 마을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서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인간의 수명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을 보전하고 그 의미를 지속해서 알릴 수 있는 평화기념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토로는 과거에 있었던 작은 마을이 아니라, 인권, 평화, 차별 등 인류보편적 가치 측면에서 지금도, 미래에도 존재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많은 시민의 관심 속에서 건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우토로 주민에게 그리고 한국의 시민들에게 ‘우토로 평화기념관’은 어떤 의미가 될까요?

우토로 평화기념관은 우토로 주민에게는 과거를 현재와 미래로 연결해주는 다리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아픔과 고통은 물론이고 이를 극복한 주민들의 용기와 투쟁은 역사적으로 보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일제의 한반도 침략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전쟁, 차별, 탄압과 이를 극복한 주민의 위대한 투쟁이라는 세계사적 의미를 동시에 간직한 곳이고요. 그래서 한국의 시민들에게는 한반도와 일본, 나아가 동북아와 세계를 연결해주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한편 일본이 몰래 감추고자 했던 역사의 퍼즐 한 조각을 남김으로써, 일본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는 중요한 상징이 되리라고 봅니다.

이제는 폐허가 된 조선인 노동자 합숙소

이제는 폐허가 된 조선인 노동자 합숙소

Q.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우토로의 작은 변화들을 지켜보며, 개인적인 소감이 궁금합니다.

제가 우토로를 방문하고 관심을 가진 것은 10년이 넘었지만 제대로 활동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노력해 오신 한일 시민사회 활동가들에게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합니다. 제 마음 속에는 우토로 마을 담벼락에 주민들이 써 놓은 ‘우토로에서 살아왔고, 우토로에서 죽으리라’는 문구가 남아있어요. 2016년에 흥사단 대학생들과 두 번째로 방문하면서 다시금 우토로를 잊지 말자, 우토로를 위해 작은 정성이라도 보태자고 마음먹었어요. 우토로를 함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그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Q. 시민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는 역사를 우리의 문제로,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에서 건강한 사회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일제강점기에 상처받은 역사를 우리 자신의 역사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토로에 공동주택이 건립되고, 우토로 평화기념관이 설립된다고 과거의 문제가 완전히 아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본이 진정 어린 반성과 사죄를 하고, 이에 대해 피해를 받은 분들이 용서하는 손길을 내밀었을 때 상처가 치유된다고 봅니다. 또한 이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좀 더 정의로운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책임지고 우토로를 기억하고 보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우토로 마을은 교토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많은 분들이 우토로를 방문해서 관심과 사랑을 전해준다면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우토로를 방문하는 분들도 분명 역사의 울림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경영사업국 홍보팀ㅣ장혜윤 간사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건 한낱 꿈일 뿐이지만 우리 모두 꿈을 꾸면 그건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 When we dream alone it is only a dream, but when many dream together it is the beginning of a new reality. _ 훈데르트바서 Hundertwas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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