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변화의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휴식부문]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기만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 유럽 미술관, 건축물 기행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휴식부문’(이하 휴식)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새로운 영감과 신선한 활력을 얻고, 지속가능한 활동기반을 만들기 위한 휴식을 지원합니다. 2017년 10개 팀(개인 9팀, 그룹 1팀) 13명의 활동가가 비움과 채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정숙 님은 보건의료 공공성을 강화하고, 모든 시민의 건강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는 15년 차 활동가입니다. 활동가는 유럽의 미술관과 건축물을 감상하며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주는 신선한 자극을 즐겼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낮잠을 잘 때는 꼭 듣는 음악이 있었다고 합니다. 말러는 정오까지 글을 쓰고 오후에는 수영을 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소설가는 거리를 3시간씩 산책하며 영감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예술가들에게는 본인에게 영감을 주는 작은 습관들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각자 이런 작은 습관들이 있지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사용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말입니다.

저는 끊임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는 활동가에게 중요한 것은 창조적인 아이디어,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자세, 그리고 체력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런 태도는 순간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삶의 작은 습관이 쌓여서 만들어 지는데, 도시에서 사는 활동가의 삶에는 그 작은 배려와 여유가 없습니다. 항상 바쁘게 서두르고, 많은 일을 해내고, 허겁지겁 뛰어다니는 쳇바퀴 같은 삶을 잠시 멈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에게 이번 기회는 평소 좋아하는 미술작품과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새로운 자극을 받은 창조적인 시간이었습니다.

도시의 적막한 풍경을 새롭게 바꾸려 했던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훈데르트 바서

훈데르트 바서의 건축물 중 가장 완벽한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 오스트리아 ‘블루마우 리조트’입니다. 정말 친자연적이고 동화 같은 곳으로 영화 <반지의 제왕> 호빗마을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을 죽기 전에 직접 와보았다는 사실에 감격할 시간도 없이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건물이 모두 자연의 생김새처럼 모두 곡선으로 되어 있고 창문도 그 크기나 색, 모양이 모두 다릅니다.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던 건축가답게 건물 안에서 식물을 키워 실내공기를 자연정화하고, 객실에는 에어컨과 재생화장지를 제외한 일회용품을 두지 않습니다.

바서는 주로 빈곤층이 사는 공공임대아파트, 쓰레기 매립장, 공공기관 같은 공공적 기능을 하는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리조트 공사를 고사했지만, 골프장 부지였던 곳에 친환경적 리조트를 세우기로 했다는 리조트 측 설득 때문에 설계를 수락했다고 합니다. 전 직원의 고용승계와 지역주민들이 만들어낸 유기농 농산물을 식단에 올린다는 조건이었다고 합니다. 예쁘게 만들려고 식물을 비닐에 가두어 키우지 않아 날것 그대로 제멋대로 생긴 채소와 과일, 그 귀한 재료의 맛을 살리는 최소한의 조리법도 감동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경험입니다. 서글퍼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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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 바서가 직접 설계 시공에 참여한 블루마우 리조트의 숙소 입구(왼), 화장실 내부(오) – 변화의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휴식부문

장시간 노동국가에서 느낄 수 없는 브뤼셀의 여유

블루마우 리조트에서 영혼의 평온을 되찾고 르네 마그리트와 루벤스, 스머프를 만나러 벨기에 브뤼셀에 왔습니다. 제가 브뤼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여유’였습니다. 유럽에서는 보통 6시면 식당이나 카페를 제외하고 모두 문을 닫습니다. 노천카페나 광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친구, 연인,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는 퇴근하고 저녁에 일이 없으면 그게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데요. 장시간 노동국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가 이들에게 보입니다.

제가 묵었던 브뤼셀 그랑플라스 광장은 그 자체로 예술의 공간이며, 그 주변에는 많은 거리가 있습니다. 각 거리의 초입에는 각각의 개성이 느껴지는 큰 벽화를 그려놓아서 어떤 거리인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가장 재밌고 활기가 넘치는 거리는 게이거리였는데요. 일단 이 곳을 가려면 무지개 건널목을 건너가야 합니다. 지나가다 몇 분이 인사를 해주셨는데 다른 거리에 비해 소란과 흥이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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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오후시간을 보내고 있는 브뤼셀 사람들(왼쪽), 게이스트리트의 벽화(오른쪽)

그래도 이곳에 온 목적인 르네 마그리트, 스머프와 수많은 갤러리와 현대 미술관

벨기에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는 우리에게 익숙한 관습을 거부한 화가였습니다. 특히 권태, 피로, 혐오 같은 평범하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익숙한 사물을 낯설어 보이게 하는 회화로 소통하기를 원했던 화가였습니다. 그래서 초현실주의자라고 불리지요. 마그리트의 생가에 가보니 홀로 새로운 세계를 실험하기 위해 외로운 인생을 살았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마그리트의 유명한 그림들을 보유하고 있는 왕립박물관보다 시내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이 곳이 더 좋았습니다. 마그리트가 걸었던 거리와 골목들이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이후 스머프와 만화박물관, 루벤스 아틀리에, 루벤스의 그림이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 등을 방문했습니다. 벨기에 곳곳에서 거리공공미술의 명물인 조나단 포웰의 초미니 환경미화원 벽화를 찾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벨기에는 수많은 박물관과 독특한 건축물의 나라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돌아다녀도 계획대로 많은 작품을 볼 수 없었습니다.

고흐와 렘브란트의 고향 암스테르담의 창의적인 현대 건축물

몇 년 전, 서울의 한 미술관이 개최한 반 고흐와 렘브란트 전시를 보러 갔습니다. 표를 끊기 위해 한 시간을 넘게 줄을 섰고, 겨우 입장한 전시장에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해서 제대로 작품을 감상하지 못하고 그냥 나온 적이 있습니다. ‘한가로운 평일 오후 시간에 이런 전시를 보는 사치는 누리는 이들은 대체 누굴까?’하는 심통만 부리다 이번 여행에서 한풀이라도 하듯이 매일매일 부지런히 박물관들을 오갔습니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반 고흐와 렘브란트의 작품을 실컷 보았고, 길을 지나다 우연한 행운까지 얻었습니다. 평소 제가 좋아하는 사진작가 안드레 세라노를 만났습니다. 세라노는 홈리스의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에 홈리스의 모습만 담았다면 홈리스를 대상화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세라노의 사진에는 그들의 모습과 이야기가 함께 담겨있기 때문에 더욱 절박함이 느껴지고, 가슴이 아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가 활동하는 이유도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끄집어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인데, 가끔 그 중심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빠진 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사진집의 맨 마지막장을 장식한 거리에서 홈리스와 대화하는 작가의 모습이 그 어떤 사진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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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의 모습과 목소리를 전하는 사진작가 안드레 세라노의 작품

저는 활동하면서 빈곤층이나 취약계층, 환자들이 사회적 차별과 편견 등으로 불편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혼자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그들의 고통을 보며 함께 아파했습니다. 출구 없는 아픔을 오래 겪다 보면 종종 아무 의욕이 없는 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오랜 시간 누적된 아픔과 피로감을 해소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바람대로 길에서 만난 외부의 생경한 문화와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신선한 자극을 얻고, 해묵은 감정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글ㅣ사진  김정숙(건강세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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