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변화의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해외연수부문] 탈핵에너지전환 사회를 위한 준비, 독일과 핀란드에서 배우다!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해외연수부문’(이하 해외연수)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역량강화 및 해외 네트워킹을 위한 해외기관 및 현장 탐방, 국제회의 참석 등을 지원합니다. 2017년 7개팀(개인 1팀, 그룹 6팀) 17명 활동가가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시민사회운동 사례를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 <에너지정의행동>의 정수희, 이영경님은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탈핵사회로의 이행을 추진하고 있는 독일, 에너지정책결정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는 핀란드를 방문했습니다. 활동가들은 유럽 사례를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한국의 탈핵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 과제를 설정했습니다.

오래전부터 탈핵을 논의하고 실행해온 독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로 탈핵운동진영은 물론 한국사회 전체가 탈핵에너지전환에 대한 논의와 논쟁으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기 직전 에너지정의행동 두 명의 활동가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탈핵에너지전환 이행 과정에서의 갈등과 해법’을 찾기 위한 유럽현장 실사를 다녀왔습니다.

우리의 계획은 이랬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핀란드를 방문하여 각 나라가 탈핵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어떤 갈등을 겪었고,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알아보자. 그래서 곧 한국사회가 맞이하게 될 변화의 시기를 대비하자.

우리의 계획은 지난 3월에 시작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되던 때였고, 조기 대선의 유력 후보들이 신고리 5·6호기를 비롯해 탈핵에너지전환 정책에 조심스럽게 동의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10일(월) 우리의 현장탐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이 당선된 대통령은 취임 한 달 후 탈핵국가를 선언하였고, 그 후속 조치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핵산업계의 조직적인 저항이 보수언론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대통령의 탈핵국가선언에 대한 탈핵운동진영의 충분한 논의와 평가가 이뤄지기도 전에 그 후속조치가 시작되어 새로운 국면의 싸움을 준비할 때였습니다.

독일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오래전부터 탈핵을 논의하고 실행해 오고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하여 프라이부르크의 보봉마을과 그 인근의 쉐나우마을에 다녀왔습니다.

보봉은 프라이부르크 외곽에 위치한 인구 5,000여명의 규모의 작은 마을입니다. 보봉은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에 인접해 있어 2차 세계대전 이후 1992년까지 연합군이 주둔해 있었습니다. 그러다 1992년 연합군이 철수하면서, 시민들은 <보봉포럼>을 만들어 연합군이 주둔하던 부지를 차가 없는 마을, 에너지를 적게 쓰는 생태마을 보봉을 조성하기로 결정합니다.

시의회는 시민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전문가들이 투입되어 시민들의 생태마을 구상이 실현가능하도록 함께 보조를 맞추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시민들의 관심과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역의 활동가들은 부단한 노력을 해야 했고, 주민들의 구상과 달리 도시계획을 추진하려 시도하는 시 행정에 맞서 기금을 모으고 행정과 기나긴 줄다리기도 해야 했습니다.

보봉마을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연립주택 곳곳에 붙은 탈핵을 지지하는 스티커와 깃발이었습니다. 보봉포럼을 통해 저에너지마을을 만들기로 한 배경에는 핵발전소로부터 벗어나자는 시민들의 의지가 있었고, 저에너지마을을 어느 정도 구축한 현재에도 이곳 마을 주민들은 탈핵에 대한 목소리와 긴장감을 놓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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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봉마을 곳곳에서 탈핵 현수막과 스티커, 깃발을 볼 수 있다. 현수막에는 “페센하임 원전 폐쇄!”라고 쓰여 있다. (변화의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해외연수부문)

쉐나우는 프라이부르크로부터 자동차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인구 2,500명 규모의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쉐나우는 흑림 지대로도 유명합니다. 흑림 지대에 위치한 마을이기도 하지만, 깊고 울창한 흑림지대를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이 흑림은 쉐나우 주민들의 삶의 공간입니다.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체르노빌로부터 2,000km나 떨어져 있는 쉐나우마을이 방사능 낙진으로부터 피해를 입고, 흑림이 오염되는 것을 지켜본 주민들은 핵발전을 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쉐나우 주민들은 <핵발전 없는 미래를 위한 부모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탈핵교육과 에너지절약 캠페인 등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주민들은 전력공급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전력회사의 문제를 인식하게 됩니다. 전력회사들은 전기를 많이 쓰는 소비자들에게 전기요금 혜택을 주었습니다. 이를 벗어나지 않으면 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주민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이에 쉐나우 주민들은 재생가능에너지로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독립마을을 구상하고, 핵발전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차례의 국민투표를 거쳐 시와 독점적으로 계약을 맺고 있던 라인훼르덴전력회사(KWR)로부터 전력망을 매입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에너지를 통해 전기를 생산하고 주민들이 주주가 된 <쉐나우전력회사(EWS)>를 설립하였습니다. 지금 EWS는 쉐나우를 넘어 독일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민들의 에너지독립 활동, 즉 시민들의 ‘반군발전소’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쉐나우 주민들은 EWS의 이러한 활동들로 독일이 탈핵하고, 에너지 민주주의와 에너지정의를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쉐나우를 방문하면서 두 가지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EWS 사무실에 독일 탈핵단체가 발행하는 수개월치의 계간지와 각종 탈핵 스티커, 리플렛이 비치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핵발전을 거부하고 에너지독립을 실현한 쉐나우 마을이 산골마을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마을의 집들과 경관, 주민들의 생활 모습이 세련되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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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나우전력회사(EWS) 사무실 현관에 탈핵 포스터가 붙어 있다. 포스터에는 “후쿠시마 사고 후 5년, 체르노빌 사고 후 30년, 그러나 아직도 독일에는 8기의 핵발전소 가동 중. 탈핵에 더 속도를 내자!”라고 쓰여 있다.

시민들의 참여와 자율성을 보장하는 핀란드

독일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오래전부터 탈핵 논의하고 실행해오고 있는 나라입니다. 오스트리아는 가동 직전에 있는 핵발전소를 국민투표로 폐쇄했습니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폐기장을 건설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들 나라에서 탈핵국가로의 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사회적 해결 과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여건상 유럽탐방 기간을 넉넉히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1978년도에 국민투표를 거쳐 탈핵을 결정했고, 공식적으로는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국가가 아닙니다. 하여 이번 일정에서는 오스트리아를 잠시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핀란드는 전체 전력 생산의 34%를 핵발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2개의 지역에서 각각 2기씩, 총 4기의 핵발전소를 가동 중입니다. 그리고 2기의 핵발전소를 추가 건설 및 계획 중에 있습니다. 핀란드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탈핵국가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서는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습니다.

그러나 핵발전소를 사용함에 따른 현세대의 책무를 인지하고 이를 책임지고자 하는 핀란드인의 자세와 정책은 우리나라와 아주 달랐습니다. 핀란드에서 핵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한 것은 1977년입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78년부터 핵폐기물 처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핵발전의 사용과 동시에 이로 인한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4년에 핀란드는 핵폐기물의 영구처분을 결정하고 핵폐기물관리기본계획을 수립을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국에서 발생한 핵폐기물은 자국 내에서 처리해야한다는 원칙을 법으로 정했습니다. 핵발전을 통해 이득을 보는 현 세대가 핵폐기물에 대한 처분 책임도 다해야 한다는 것이 법으로 제도화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핵폐기물관리기본계획에 따라 핀란드 정부는 약 100여개의 이르는 지역을 핵폐기장 후보지로 광역부지조사(1984~1985)를 진행하고, 이를 다시 5개 후보지로 압축해 부지 특성조사(1986~1992)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최종 4개 부지를 선정해 상세 부지조사(1993~2000)를 실시하고, 주민 수용도 조사(1999)를 거쳐 오킬루오투(Olkiluoto) 핵발전소가 위치한 유라조키(Eurahoki) 지역을 핵폐기장 후보지로 최종 선정했습니다. 이후 지방의회의 의결(2001)을 거처 핀란드의 핵폐기장 부지가 확정되었습니다. 부지조사에서 핵폐기장 부지 확정까지 약 17년이 소요됐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의 핵심은 부지선정 과정의 기간에 있지 않습니다. 핵폐기장 부지가 선정되었다고 해도 지방의회는 언제든지 핵폐기장 건설 및 운영에 대한 거부권을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에 있는 유치 특별지원금도 없습니다. 규제기관은 일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을 직접 조사해 주민과 시민이 원하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제공했습니다. 공청회와 설명회가 수시로 개최되었고, 정부 및 규제기관, 전문가에 대한 신뢰가 사회 전반에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핵폐기장 부지 선정과 건설과정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최종 4개 후보지역 가운데 유라조키는 지반 안정성이 최우수한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유라조키가 최종 부지로 선정된 것에는 이 지역에 핵발전소가 운영되고 있고, 주민 수용성이 높으며, 핵폐기물 이동으로 인한 위험을 최소화 한다는 것에 큰 가산점을 주었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곳이 후순위로 밀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부지 선정과정에서 지자체가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어 시민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적었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유라조키는 지역의회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핵폐기장 부지 확정을 의결하였습니다. 절차상 주민투표를 실시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지역의회의 압도적인 찬성과 이들에 대한 높은 신뢰, 그리고 핵폐기장을 건설하고 운영하게 될 사업체의 자체 주민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주민투표가 생략되었습니다. 핵폐기장 부지선정 과정에서 시민사회가 제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고, 주민투표마저도 생략되면서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효과적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럽실사를 준비하면서 핀란드 핵폐기장 부지가 정말 경기도만한 암석으로 되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면적은 정확하지 않으나 핵폐기장 부지 주변으로는 암석이 광범위하게 발달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적은 인구였습니다. 핀란드 핵폐기장은 오킬루오투 핵발전소가 가동 중인 유라조키에 있습니다. 유라조키의 면적은 345.64km²으로 부산시의 약 절반인데. 인구수는 5,938명(2016.1.1.기준)으로 부산시의 약 600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발전소나 핵폐기장 입구 역시 화려하게 꾸며진 우리나라와 달리 오래된 버스 정류장처럼 왜소하고 낡아보였습니다.

핀란드는 탈핵국가를 선언한 나라가 아닙니다. 핵발전소의 규모나 숫자도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습니다. 그러나 핀란드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사회적 신뢰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와 핵발전사업자, 규제기관, 전문가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높았고, 국민들은 이들 기관이 발표한 자료와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곧 시민들의 높은 참여와 자율성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는 독일도 비슷했습니다. 탈핵국가로의 이행 과정에서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시민들의 높은 참여와 자율성으로 탈핵국가로의 실천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본다고 압니까?” 오킬루오투 핵발전소 및 핵폐기장 홍보관에서 만난 한국 핵산업계 관계자의 말입니다. 우리는 그날 단체관람 인원수를 충족하지 못해 시설 내부 관람을 하지 못했는데, 우연히 세계 원자력 대학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팀을 그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한국 핵산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그 분은 시설 내부를 보지 못해 아쉽다는 우리말을 듣고서 “본다고 압니까?”하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전문가들만 안다. 국민들은 말해도 모른다”는 우리나라 핵산업계의 대표적 인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여부를 국민에게 묻겠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말을 하자, 핵산업계에서는 일제히 “비전문가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런데 핀란드에 가서조차 우리나라 핵산업계 종사자의 국민비하 발언을 들으며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뢰와 자율과 민주주의, 이것이 향후 탈핵국가로의 이행에서 가장 큰 쟁점과 갈등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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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핵폐기장 전경(사진제공: POSI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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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핵발전소에서 시작 된 송전탑들 (사진제공: POSIVA)

※ 본 글은 탈핵신문 2017년 8월호와 9월호에도 실렸습니다.

글ㅣ사진 정수희(에너지정의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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