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 지원사업 길 위의 희망찾기] 다시 만난 ‘벼랑 끝 기억 여행’ 팀

환하게 웃고있는 학생들
1년 후에도 여전한 발랄 에너지와 환한 웃음

1년 전 여행 노트를 꺼내어

연일 유례없는 폭염의 기록을 경신하던 2016년 여름. 3박 4일 동안 무려 6개의 시․ 도를 넘나들며 열일곱 살의 놀라운 에너지를 증명했던 ‘벼랑 끝 기억 여행’ 팀을 2017년 여름, 다시 만났다. 방학식을 마치고 도서관에 모인 가윤, 경하, 동준, 승래, 승헌, 유경, 유니, 민영은 이제 열여덟 살이다. 옛 일기장을 펼치듯 떠올려본 1년 전 여름. 그리움이 길을 낸 ‘벼랑 끝 기억 여행’을 되감으며, 아이들은 여름 바다의 윤슬처럼 웃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

1년만에 다시 모인 ‘벼랑 끝 기억 여행 팀’

그리움이 낸 길을 따라

‘물범’에서 시작된 여행이라 들었건만 물범 이전에 ‘몽골’이 있었다는 걸, 1년 만에 처음 알았다. 2016년 봄, 담임선생님을 통해 ‘길 위의 희망 찾기’ 지원사업을 접한 이우고등학교 1학년 4반은 그 즉시 ‘몽골파’와 ‘일본파’로 나뉜다. 가윤이를 포함한 8명의 친구는 드넓은 초원과 별빛 흥건한 밤하늘을 꿈꾼 몽골파였다. 하지만 지원사업 모집 요강을 꼼꼼히 살펴본 후, 몽골파는 국내 여행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기획부문 10개 팀 중 국내 8팀, 해외 2팀을 선정한다는데, 아무래도 당첨확률을 높이려면 다수를 뽑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나름의 ‘전략’이었다.

단체사진 찍는 학생들

여행이 이어준 끈끈한 인연

그럼 국내 어디로 가지? 고민할 때 쯤, 매력적인 ‘물범’ 카드를 꺼낸 건 승래다. 일찍이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조력발전소 건립을 둘러싼 가로림만의 갈등과 그곳에 서식하는 점박이물범 이야기를 떠올린 것. “물범 보러 갈까?” 승래의 제안에, 몽골파 8명은 기꺼이 별 대신 물범을 끌어안았다. 물범에 꽂힌 특별한 이유는 없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고 싶었던 것처럼, 귀한 물범이 보고 싶었을 뿐.

남자 고등학생

‘물범 보러갈까?’ 제안했던 승래

물범에서 영감을 얻은 ‘벼랑 끝 기억 여행’은 잊혀진, 혹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그것은 멸종위기종인 점박이물범일 수도 있고, 유년시절에 뛰놀던 골목길이기도 하다. 각자에게 소중한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졌다. 성장과 발전이란 명분 아래 사라질 위기에 처한, 벼랑 끝에 내몰린 자연과 삶의 터전, 그리고 유년의 기억을 찾아가는 여행이 됐다. 그리움이 길을 냈다. 가령, 그리운 기억을 이야기하는 과정에 유경이는 어렸을 때 살던 동네와 가까운 구룡마을을 떠올렸고, 승래는 원추리꽃 만발한 덕유평전을 떠올리는 식이었다.

여자 고등학생

구룡마을을 제안했던 유경

찬란한 여름날의 동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지금 여기, 이우고 역시 그리운 기억이 되겠지?”
여행 계획을 짜던 중, 누군가 던진 이 한마디에 ‘벼랑 끝 기억 여행’의 시작점은 학교가 됐다. 분당 이우고등학교에서 출발해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과 달동네 개미마을, 충남 서산시 가로림만, 전북 무주군 덕유산, 경남 합천군 해인사, 한창 사드로 뜨거운 경북 성주군까지, 6개의 시․ 도를 넘나든 대장정엔 생태적·역사적·문화적 가치와 개발 논리의 대립 속에 첨예한 갈등을 겪어온 동네가 주를 이룬다.

남자 고등학생

환한 웃음으로 소환해보는 ‘벼랑 끝 기억 여행’의 기억

그 중 서산 가로림만은 조력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수년간 첨예하게 이어져 왔던 곳이다. 충남 서산시와 태안군 사이에 있는 가로림만은 점박이물범 등 보호 대상 해양생물의 서식처이자 다양한 수산생물의 산란장으로, 지역 어민들에겐 소중한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질긴 공방 끝에 2016년 해양수산부는 가로림만 해역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했고, 조력발전소 건설 계획은 백지화됐다.

물범으로 시작된 여행인 만큼, 물범과 만남에 거는 기대가 가장 컸다. 하지만 물범은 “저~어기, 저거!”라며 먼바다를 가리키는(실은 수면 위로 잠깐 머리를 내민 물범을 가리키는), 가로림만 이장님의 손끝을 쫓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뭔가 둥근 물체를 보긴 봤으나 ‘물범 전문가’ 이장님의 인증 없인 절대 물범인지 모를 형태로 물범을 만났다.

썰물 때만 나타나는 바다 한가운데 모래섬 풀등에서 아이처럼 뛰놀던 시간과 배 위에서 갓 잡은 꽃게를 넣고 끓여 먹은 라면, 생을 걸고 가로림만을 지켜온 이장님과 마을주민들의 이야기는 모든 날이 좋았던 ‘벼랑 끝 기억 여행’에서도 특히 더 좋았던, ‘결정적 순간’으로 손꼽힌다.

라면 먹고있는 학생들

갖 잡은 꽃게를 넣고 끓인 꽃게라면은 최고의 별미였다 (출처: 벼랑끝기억여행 페이스북 페이지)

‘기억’하겠다는 연대의 약속

인구 5만이 채 안 되는 자그마한 도시. 참외 상자에서나 보던 성주가 매일같이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16년 여름부터다. 2016년 7월, 국방부는 성주군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공식 발표했고, 제3 부지설이 나오다 9월 말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위치한 성주골프장으로 사드 배치를 확정했다. ‘내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주민들은 매일 저녁, 군청 앞에서 촛불을 든다. ‘사드 배치 결사반대’를 새긴 플래카드가 도심 곳곳은 물론 아파트 옥상까지 붉게 물들였던 2016년 8월. 가장 뜨거운 날, 가장 뜨거운 도시에서 ‘벼랑 끝 기억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

성주 고깃집에서 놀랐던 기억을 나누는 유니

“성주에서 처음 고깃집에 갔어요. 마지막 여정이니까 든든히 고기를 구워 먹자고 간 건데, 가스 불을 켜다 펑- 튀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 순간 사장님이 갑자기 ‘성주 사드 발사!’를 외치시는데, 몇 초간 정적이 흘렀어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농담도 사드로 할 만큼, 성주 군민들에게 사드는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었어요.” (유니)

성주 거리풍경

현수막으로 도배되어있던 성주 거리 풍경 (출처: 벼랑끝기억여행 페이스북 페이지)

길 위에서 만난 찬란한 여름 산과 바다엔 아이처럼 녹아들고, 타인의 고통 앞엔 마음과 귀를 열었다. 아름다운 자연이든 이웃의 아픔이든, ‘기억’한다는 것은 공감과 연대의 첫 발자국임을 알았다.
“몽골보다 좋았어, 그치?” “응, 진짜, 진짜!”

아무도 몽골을 다녀온 적은 없지만, 가로림만의 물범은 몽골의 별을 이겼다. 아이들이 뽑은 ‘벼랑 끝 기억 여행’의 ‘베스트 포토’도 가로림만의 풀등에서 촬영한 컷이다. 각자 주운 조개껍데기를 발등 위에 올리고 여덟 명의 발을 둥글게 모아 찍은 사진이 그것. 여행을 다녀온 지 꼬박 1년이 지났건만, 아이들은 사진 속의 조개껍데기를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너도? 나도! 나도!”

조개껍데기로 연출한 해변의 발사진

조개껍데기로 연출한 베스트 포토 (출처: 벼랑끝기억여행 페이스북 페이지)

서랍 속 조개껍데기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바다 한가운데 모래섬을 만난 양 팔짝팔짝 뛰었다. ‘벼랑 끝 기억 여행’을 추억하며 행복했던 시간을 표현하는 말들은 ‘아이처럼 놀았다’, ‘아이처럼 즐거웠다’와 같이 ‘아이처럼’에 방점이 찍혔다. 열일곱 인생에도 햇솜 같은 아이의 시절은 생의 가장 그리운 계절인 모양이다.

“지난 여행을 생각하면 초록, 파랑, 노랑… 이런 찬란한 빛깔들이 뭉게뭉게 떠올라요. 좋은 기억이 너무 많지만 개미마을 놀이터와 가로림만 풀등에서 친구들과 아이처럼 뛰놀던 시간이 특히 행복했어요.” (유경)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

“친구들과 함께 한 순간들을 특별하게 간직하고 싶단 생각에, 처음으로 필름카메라를 챙겨갔어요. 그런데 제가 뚜껑을 열고 필름을 감은 거예요. 필카를 처음 사용해본 거라 몰랐어요.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인화하려고 보니 이미 다 증발해버리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많이 아쉽긴 했는데, 카메라에 담았던 풍경들이 아직도 생생해요. 디카와 달리 필카는 먼저 눈에 한번 담고 셔터를 누르게 되던데, 그 과정을 거치니 기억에 더 오래 남아있는 거 같아요.” (가윤)

덕유산 케이블카

비누방울 하나로 웃고 떠들던 덕유산 케이블카

“덕유산에서 내려오던 길이 힘들긴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도 그 하산길이에요. 중간에 멈춰있던 리프트에 앉아 꿀 같은 휴식을 취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하고 주변은 온통 초록에, 잔잔한 들꽃이 만발했거든요. 그때 제가 사진 찍을 때 쓰려고 준비해간 비눗방울 장난감을 꺼냈는데, 정말 챙겨오길 잘했구나 싶었어요. 비눗방울 속에 웃고 떠들던 친구들의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남아있어요.” (경하)

“이동시간이 기억에 남아요. 저는 맨 뒷좌석을 차지해 거의 누워서 갔는데, 잠이 안오더라고요. 노래도 듣고, 깨어있는 친구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경하가 챙겨온 우쿨렐레를 치며 동요 ‘비행기’를 수십 번은 불렀던 거 같아요. 마침 우리 여행 기간이 리우 올림픽과 겹쳤는데, 밤마다 숙소에서 친구들과 올림픽 경기를 보던 것도 재밌었어요. 여행은 ‘어디를 가는지’ 보다 ‘누구와 함께 가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제겐 그래요.” (승헌)

환하게 웃고있는 학생들

1년 후에도 여전한 발랄 에너지와 환한 웃음

글 고우정 ㅣ 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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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희망찾기]란?
아름다운재단이 진행하는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 지원사업 ‘길 위의 희망찾기’는 2001년부터 현재까지 아동청소년들에게 국내외 여행 프로그램을 지원함으로서 ‘청소년 스스로 만들어가는 여행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는 여행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트래블러스맵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변화사업국 변화사업팀ㅣ임주현 간사

배분하는 여자. 이웃의 작은 아픔에도 공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문화, 환경, 사회참여영역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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