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안목의 섬세하고 꼼꼼한 지원에 반하다 – 박경태 배분위원장 인터뷰

회색 자켓을 입고 안경을 쓴 남성이 손에는 마이크를 들고 앞을 바라보며 웃고 있음.

회색 자켓을 입고 안경을 쓴 남성이 앉아서 마이크를 들고 앞을 보며 말을 하고 있음.

우리 모두가 소수자라는 가능성 혹은 출발선

다수의 틀로 만들어진 ‘보편’은 개개인(individual person)을 담아낼 수 없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이 말한 대로 누군가에게 맞춤한 신발이 다른 이의 발에 맞으란 법은 없다. 그래서 저마다의 미묘한 차이를 삭제하고 표준을 상정한 뒤 이를 벗어난 사람에게 ‘비정상’ 낙인을 찍는 건 폭력이다.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NGO대학원 박경태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 소중한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다수자에 해당하는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다른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죠. 소수와 다수를 규정하는 수많은 기준은 때마다 다르게 적용되기에 우린 때에 따라 다수자가 되기도 소수자가 되기도 해요. 어떤 경우 다수자의 지위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후천적인 이유로 소수자가 되기도 하죠. 그래서 다수자와 소수자는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 서로 호환되며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개념입니다. 그 맥락에서 우리는 모두 소수자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소수자’라는 건 ‘정상’과 ‘표준’을 향해 내달릴 때 발생하는 수직 구조의 경쟁에서 벗어나야 수용 가능한 전제다. 하나하나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의 경계를 뭉뚱그리지 않고 섬세하게 마주해야 담아낼 수 있는 정체성. 그래야 묶여버린 집단이 아닌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서 살게 된다. 파편화 되지 않고 개별화된 성숙한 개인을 만나게 된다. 박 교수는 그것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미국 텍사스 대학에 유학 가서는 원래 통일 관련 이슈들, 분단으로 인한 사회 간 격차에 대해서 공부를 하려고 했어요. 한데 1992년 4월 29일에 LA폭동이 났어요. 제가 있는 곳이 많이 떨어진 곳이긴 해도 그때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막내 동생처럼 대해주시던 교민, 교포 가정들이 LA폭동과 오버랩 되면서 그분들의 가게가 불타고 있다는 충격을 받은 거예요. 왜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자기네끼리 갈등하게 될까. 충격은 궁금증으로 이어지고 논문 주제를 인종문제로 바꿨어요.”

이 사건은 박 교수가 인종 문제,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4년에 귀국한 그는 2년 후인 1996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민족과 인종’이라는 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그 사이 과목 이름은 ‘소수자 연구’로 바뀌었다. 민족•인종적 소수자뿐 아닌 여러 소수자들을 다루게 됐다.

회색 자켓을 입고 안경을 쓴 남성이 손에는 마이크를 들고 앞을 바라보며 웃고 있음.

고기 낚는 법을 알려주는 나눔

“10년 전엔 소수자 문제를 공부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쓸모 있는 공부를 좀 하지. 하필이면 그런 것을 배웠냐’는 식의 말을 건넸죠, 물론 점잖게요. 허상이기는 하지만 단일민족국가인데다 다인종 사회도 아닌 한국에 굳이 그런 과목이 필요하겠느냐는 거였겠죠. 한데 요즘은 안 그래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주제를 연구할 생각을 했느냐고 다르게 평가하죠. 불과 몇 년 사이 소수자는 우리에게 매우 가까이 또 중요하게 다가온 거예요.”

쓸모없는 존재로 치부되던 소수자들이 하나둘 제 목소리를 돋울 무렵, 아름다운재단과 인연을 맺게 됐다. 2011년에 김동노 배분위원장이 아름다운재단에서 같이 일해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전부터 아름다운재단을 응원해왔던 박 교수에겐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소식이었다. 공공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박탈된 부분을 나누려는 아름다운재단의 행보는 소수자 인권을 고민하는 자신과 닮아있었다. 더군다나 배분하는 일이었다. 기금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가,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는 소수자와 어떻게 만나느냐의 문제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다른 공익재단들과 달리 아름다운재단은 고기를 주지 않고 낚는 법을 알려줍니다. 직접지원, 긴급구호지원도 중요하지만 사회 구조를 고민하는 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름다운재단은 후자를 함께 고민하고 실천합니다. 기부자에게 불쌍한 사람 도와주세요, 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고요. 선정성에 기댄 공익홍보를 지양하며 우리 사회의 방향을 바꾸는 방식으로 기부문화를 선도한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배분을 담당하게 된 게 제게는 참 기쁜 일입니다.”

구조를 변화시키는 나눔을 실천하다

박경태 배분위원장을 비롯한 배분위원은 모금 파트에서 지정돼서 들어오는 경우를 제외한, 일종의 자율기탁기금을 여성, 환경, 아동, 노인 등 여러 대상에 초점을 맞춰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그간 아름다운재단 1호 기금인 보육시설 퇴소 학생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는 ‘김군자할머니기금’과 저소득층 생계비를 지원하는 ‘홀로사는 어르신 생계비 지원사업’ 등 숭고한 나눔과 함께했다. 상처를 훈장인 양 드러내지 않고 경험으로 만드는 게 나눔이라는 걸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손해배상 가압류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개미스폰서 ‘노란봉투 프로젝트’와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 지원사업 ‘60일의 건강보험증’ 등의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부단한 노력도 인상적이었다.

회색 자켓을 입고 안경을 쓴 머리를 묶은 남성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정면을 바라보며 서있음.

“정말 하나하나 너무 소중한 사업입니다. 모두가 아름답고 꼭 필요하죠.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시민단체 활동가 재충전 프로그램’, ‘활동가 자녀 보육비 지원 프로그램’이에요. 열악한 환경의 NGO 단체 활동가들이 방전되기 전에 보듬어주는 사업이라니 정말 대단하죠. 일을 하라고 비용을 주기에 앞서 활동가들의 성장과 재충전을 생각하는 아름다운재단이 참 반갑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긴 안목의 섬세하고 꼼꼼한 지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경태 배분위원장은 안전하게 기존 관행을 답습하는 나눔을 넘어서서 사각지대의 소수자를 위한 나눔을 꿈꾼다. 때문에 박탈을 메우기보다 박탈이 없도록 구조를 변화시키는 나눔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이 지금처럼 꿋꿋하게 존재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정의로워지는 데 함께하기를 희망한다.

 

글 우승연 l 사진 이동훈

나눔사업국 기부자소통팀ㅣ정희은 간사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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