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의 지대넓얕] 즐거운 상상, 기본소득

스위스 제네바의 플랭팔레 광장에 전시된 거대한 홍보 포스터

비정기적으로 포스팅할 아름다운재단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하 아재의 지대넓얕)은 이 시대의 참 교양인으로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은 사회적 이슈를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지난 6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습니다. 스위스는 직접 민주주의의 구체적 실현으로서 국민 발의를 채택하고 있는데요. 국민이 제안한 법안에 대해 찬반 투표하여 법제화하는 제도입니다. 2013년 민간 그룹 주도로 ‘스위스 정부는 모든 국민에게 성인 기준 월 2,500스위스프랑(약 3백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기본소득제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국민투표 결과는 찬성 23.1%, 반대 76.9%로 부결되었지만, 이를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논의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아재의 지대넓얕, 첫번째 주제는 기본소득입니다. 

스위스 제네바의 플랭팔레 광장에 전시된 거대한 홍보 포스터

스위스 제네바의 플랭팔레 광장에 전시된 거대한 홍보 포스터 <당신의 소득이 보장된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출처: 야후 뉴스)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모든 시민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

기본소득의 개념은 간단합니다. 모든 시민에게 아무런 자격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보편성(부자에게도 준다), 무조건성(노동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개별성(개인별로 지급한다). 이 세 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특정한 인구 집단에게 지급되는 소득도 부분적인 기본소득으로 볼 수 있습니다(강남훈 2014).

기본소득은 공적 자원을 이용해 정부가 지급합니다. 그러나 주체가 반드시 국민국가일 필요는 없으며(지방정부, 유럽연합, UN차원), 공적 자원이 반드시 조세를 통해 마련될 필요도 없습니다(미국 알래스카 배당금제도). (반 빠레이스 외 2010)

왜 기본소득인가? 헬조선을 벗어나기 위한 해법?

한국 사회는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2015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유통된 단어는 ‘헬조선’일 것입니다. 지옥 같은 한국이라는 뜻의 신조어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래 소득 불평등과 상대적 빈곤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한 소득 감소, 고용 불안에서 기인하며 사회안전망 부재 등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임금을 동결하고, 구조조정 칼날을 들이대고, 비정규직을 양산합니다. 청년 실업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2016.2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체 실업률 4.9%, 청년실업률 12.5%). 청년은 스스로를 잉여라고, 노오력이 부족하다고 자조합니다. 일하는 사람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밥벌어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 위험한 일을 마다치 않습니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3분의 1은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OECD 2014). 이들은 정규직과 같은 노동을 하고서도 절반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빚을 내어 대학 등록금을 내고 집을 삽니다. 2015년 말 가계부채는 1,2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한국의 노인빈곤률은 49%에 달합니다. 이들에게는 비빌 언덕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없이, 그저 버티는 삶을 살다가 결국에는 막다른 곳으로 내몰립니다. 한국은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십일 년째 쓰고 있습니다. ‘헬조선’을 벗어나려면 기존의 노동과 복지 패러다임을 뛰어 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만약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한다면 어떨까요?

상상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기본소득이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한다면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복지 사각지대에 해당하는 이들은 400만 명에 이릅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제도 도입 이래 수급자를 전 국민의 3% 내외 수준으로 유지해 왔습니다. 2012년 중위소득의 50% 이하 소득 가구가 전체 가구의 12%임을 고려하면 1/4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입니다(남재욱 외 2014). 기본소득은 보편 복지제도로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수치심과 낙인 효과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현행 제도는 일반적으로 근로소득이 발생하면 급여를 삭감하기 때문에 근로 유인을 저해하고 실업 상태를 유지시키지만(서정희 외 2010), 반면 기본소득은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지급하여 실업 함정을 발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거리두기를 할 수 있습니다. 임금 노동에 있어 협상력이 생길 것입니다. 오랜 시간 일하지 않아도 되고, 임금이 적거나 위험한 일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생계를 위한 시간을 줄여서 자유 시간을 확보하면 그동안 밥벌이 때문에 미루어 두었던 문화, 예술, 창작, 가사, 돌봄, 사회 참여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를 증대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의 기본소득제 도입은 수년 안에 실현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정치적 합의, 재원 마련 등 복잡한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기본소득이 사회공동체 구성원의 권리임을 알고 이를 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의 부는 대부분 사회공동체가 가진 자산에서 나옵니다. 본래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공유재’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모든 구성원에게 배당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상상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습니다.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상상해보는 것, 즐겁지 않을까요? 


참고문헌

강남훈. 2014. “모두에게 존엄과 자유를: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기본소득’.” 『민주』 vol.10. pp.136-157.
곽노완. 2010. “여러 가지 기본소득과 21세기 변혁의 주체.” 『진보평론』 제45호 2010년 가을호. pp.44-78.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2016. 『사회적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 자료집. 7월.
남재욱, 이재은, 장동열, 정수미. 2014.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과 개혁방안 – 수급선정기준 개선을 중심으로』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보고서 2014-1.
노대명. 2015. “한국 복지제도의 현황과 쟁점.” 『보건복지포럼』. pp.6-21.
이상헌. 2015. “기본소득의 쟁점들.” 녹색당, 녹색전환연구소 2015 기본소득 심포지엄 발제문. 11월.
서정희, 조광자. 2010. “보편적 복지제도로서의 기본소득.” 『진보평론』 제45호 2010년 가을호. pp.79-98.
필립 반 빠레이스, 브루스 액커만, 앤 알스톳. 2010. 『분배의 재구성: 기본소득과 사회적 지분 급여』 서울: 나눔의집.
하승수. 2015. “기본소득 로드맵.” 녹색당, 녹색전환연구소 2015 기본소득 심포지엄 발제문. 11월.
OECD. 2014. 『OECD 한국경제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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