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하진 않지만 백억달러를 주겠소

섹시하진 않지만 백억달러를 주겠소

최근 한국도 미국도 정치의 계절을 맞이하며, 다시 전설의 미드 <웨스트윙>을 보았습니다. 

정치드라마도 이토록 재미있을 수 있다니 감탄스러운 드라마지요. 

무궁무진한 이슈를 다루고 있는데, 마침 이 드라마에 ‘재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소개할까 합니다. 

간략하게 상황을 요약 설명하자면…

이임을 앞둔 백악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 CJ에게 온갖 기업과 기관에서 이사직 제안이 쏟아집니다. 정부에 연줄이 있는 사람을 찾는, 말하자면 전관예우인 셈인데, 한 달에 몇 시간 이사회에 참석하면 엄청난 보수를 주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직접 CJ를 찾아온 슈퍼슈퍼리치(이 사람이 몬타나 주의 땅을 거의 샀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빌게이츠 쯤의 인물인 듯 합니다)는 좀 다른 제안을 합니다. 이 돈을 혼자 갖고 있으면 욕먹을 것 같으니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중요한 문제를 하나 골라서 집중적으로 해결하고 싶은데 이런 일에는 당신이 일가견이 있지 않냐”고 말합니다.

답변은 바로 나왔습니다. “고속도로가 딱”이라고요. ‘낫 섹시’하고 이런 일엔 모금도 안 하지만, 아프리카 관련 프로젝트는 십중팔구 물품이나 인력 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현실 이슈들을 콕콕 찍어내는 드라마 특성답게, 실제로도 국제개발협력 사업에서 아프리카 도로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지만 잘 해결되지 않는 사안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 슈퍼리치는 “그게 정말 필요한 일이라면 10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뭘까요?

아론 소킨 각본, 미국 NBC 제작 정치드라마 의 한 장면.

아론 소킨 각본, 미국 NBC 제작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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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소킨 각본, 미국 NBC 제작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의 한 장면.

 

100억 달러면… 대강 1달러를 1100원이라고 잡으면… 아… 그러니까… 아마도 11조 쯤 되네요. 아름다운재단이 1년에100억원씩 모금한다고 치면 1100년, 그러니까 조선왕조 500년을 두 번 돌릴 세월 동안 열심히 모금하면 나오는 돈이군요. 어허~ (먼 산)

자, 제가 여기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아름다운재단 간사인 제게 “중요한 문제를 하나 골라서 집중적으로 해결하고 싶다”고 한다면, 저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요? 제게 섹시하지 않더라도, 아니 어쩌면 섹시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한참 생각해봤지만 사실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몇 개 떠오르긴 했지만 없지만 단상에 그치더군요. 평소에 사회에 대해서 이런저런 불만도 많았는데,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뭐냐고 스스로 물어보니 참 막막했답니다.

헌데 저만 모르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현실에서도 드라마처럼 슈퍼리치가 재단이나 단체를 만드는 일은 점점 많아지고, 이제는 아예 이들이 직접 의제를 설정하고 재단을 설립하는 추세입니다. 빌 게이츠가 그랬고 저커버그는 아예 유한회사를 만들었지요. 선의에서 비롯된 활동이겠지만, 과연 세금같은 공적인 방식이 아니라 부자들의 뜻에 따라 사회 변화의 방향이 좌우되는 것이 맞는 방식이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바로 그 문제’를 제시하는 비영리 단체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듯 합니다. 

다행히도 세계적인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과 2015년, 국제기구들과 비영리 단체, 각국 정부들은 이 세상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치열하게 논의를 거듭한 끝에 잠정적인 ‘답’을 구했습니다. 지난해, 기존의 새천년개발목표를 평가하고 발전시켜 17대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SDGs(지속가능발전목표)에는 무려 193개국이 합의를 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벌써 SDGs를 기준으로 사회공헌 사업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제 생각에는 한국 비영리 단체들은 SDGs처럼 신뢰받는 의제, 구체적 목표와 방향을 갖춘 의제를 만들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10여 년 전에 비해서도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 같습니다. 시민사회단체 캠페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싸늘해졌고 시민들의 참여도 신뢰도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국내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의 모임에서는 “새로운 사업을 해보고 싶은데 어떤 주제로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단골 주제라고 합니다. 왜 한국의 비영리단체들은 ‘고속도로’와 같은 답을 주지 못하는 걸까요? 모금액수도 늘어나고 비영리 단체의 규모도 커지고 활동방식도 훨씬 더 세련되어지고 다양한 전문기법이 도입됐는데, 왜 그럴까요?

기어코 우리의 ‘고속도로’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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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소킨 각본, 미국 NBC 제작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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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소킨 각본, 미국 NBC 제작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의 한 장면.

 

이 드라마에서는 슈퍼리치는 “이런 문제에는 당신이 일가견이 있지 않냐”고 말합니다. 

결국, 기부자들이 비영리 단체에게 요구하는 것, 또는 (기부자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비영리단체들이 보여줘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일가견’, 그리고 그에 대한 구체적 근거 말입니다. CJ는 이것을 훌륭하게 보여주었고, 그래서 섹시하지도 않은 아프리카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10억 달러를 얻었으며 결국 재단을 설립하게 됩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역량을 만들 수 있는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이렇게 길게 주절주절 써놓았지만, 허무하게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서도 못 찾겠습니다.

아마도 쉽게 낼 수 있는 답이 아닐 것이고, 또 쉬워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서로의 협업으로 겨우 한 걸음 나아간 답을 찾고, 또다시 바로 그 자리에서 다음의 걸음을 찾아 더듬더듬 내딛는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이지요.

함께 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자칫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지애와 용기, 유연성, 포용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과정을 거쳐서 기어코 한 발 나아가는 의지가 우리 모두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과 여러 비영리단체가 끝내 이러한 고속도로를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치지 않고, 멈추지 않고 말입니다. 서로 아주 많이 격려해주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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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소킨 각본, 미국 NBC 제작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의 한 장면.

 

덧말1. 올해 초 아름다운재단에서도 간사들이 저커버그의 기부를 어떻게 볼 것인지 토론을 한 적이 있답니다. 아름다운재단 간사들의 생각이 알고 싶으시다면…

▷ 저커버그의 기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덧말2. SDGs는 국제개발협력단체들이 더 관심을 두고 논의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한국에도 중요하답니다. SDGs는 양성평등, 환경 등 여러 경제상황의 국가에게 두루 적용될 의제와 목표를 제시했거든요. SDGs가 더 궁금한 분들은…

▷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그게 뭔데 (1)

▷ 슬로데이와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의 SDGs 인포그래픽

덧말3. 기회가 된다면, <웨스트윙>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소 미국 중심의 세계관이지만, 한국 정치상황을 생각해보면 드라마에 나타나는 민주주의는 참말로 부럽답니다. 무엇보다 에피소드마다 다양한 주제가 펼쳐지는데, 미국 정치는 물론이고 다양한 정치사회 이슈들을 두루두루 훑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말 정말 재미있는 데다가 놀랍게도 대부분 주제마다 상반된 입장들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으니 친구나 연인과 함께 보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눠봐도 좋을 것 같아요. ^^

아름다운재단 http://www.beautifulfund.org/

경영사업국 홍보팀ㅣ박효원 간사

간사한 간사, 우유부단 고집쟁이, 둔감한 나노마인드, 수다스런 낯가리스트, 성실한 귀차니스트, 초지일관 모순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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